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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신약로마서

로마서 3:19-31

by BibleMeditation 2025.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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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느니라

로마서 3장 19절부터 31절까지는 바울이 복음을 가장 농밀하고 명확하게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앞선 모든 고발과 진단은 이 구절들을 위한 서론이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복음의 핵심, 즉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는지를 선포합니다. 율법과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의로움이 주어진다는 이 복음의 진수는 모든 신자에게 다시금 은혜 앞에 무릎 꿇게 만듭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 뿐, 의롭다 하지 못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3:19). 바울은 율법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 주어졌는지를 명확하게 말합니다. 율법은 사람을 의롭게 만들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은 모든 입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의를 주장할 수 없도록, 율법은 하나님의 완전한 기준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입을 막고'(프라소폰 프라소게타이, φρασσεῖται πᾶν στόμα)입니다. 율법 앞에서 누구도 변명하거나 항변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면, 인간은 어떤 자기변호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도덕성, 열심, 종교적 행위는 그 빛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3:20).

율법은 거울과 같습니다. 우리의 더러움을 비추지만, 그 더러움을 씻어낼 수는 없습니다. 이 점이 바로 복음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율법을 지키려 애쓴다 해도, 그 본성이 죄로 물들어 있는 이상, 그 어떤 노력도 하나님의 의로우신 기준 앞에서는 무력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구원의 길이 아니라,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을 가진 것입니다. 이는 개혁주의 신학에서 말하는 '율법의 제1용도', 즉 인간의 죄를 밝히 드러내어 복음으로 인도하는 역할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서 증거를 받은 것이라”(3:21). 이 말씀은 신약 전체의 복음 진술 중 가장 밀도 높은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Νυνὶ δὲ)은 구속사적 전환점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율법의 시대가 끝나고, 이제는 복음의 시대가 열렸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하나님의 의'(디카이오쉬네 투 테우, δικαιοσύνη θεοῦ)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성품 자체를 뜻하기도 하지만,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의롭다 하심’, 즉 ‘칭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의는 '율법 외에'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율법과는 별개로, 그러나 율법과 선지자들, 즉 구약 전체가 예언하고 준비한 그 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의는 누구에게 주어집니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3:22). 바울은 매우 단호하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모든 믿는 자에게. 인종, 성별, 지식의 정도, 종교적 배경과 상관없이, 오직 믿음을 통해 이 의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어떤 행위도 섞일 수 없습니다. 인간은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속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 이 말씀은 인간의 보편적인 상태를 선언합니다. 누구나 죄인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 곧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24절은 그 절망을 반전시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여기서 ‘속량’(아폴루트로시스, ἀπολύτρωσις)은 노예를 대가를 지불하고 해방시키는 행위를 말합니다. 우리는 죄의 종이었고, 그 대가로 죽음과 심판을 받아야 할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그의 죽으심이 우리의 대속물이 되어 우리를 해방시킨 것입니다. 이 은혜는 값없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 말은 값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그 어떤 자격도 없이 받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이 속죄의 중심에 ‘화목제물’이라는 개념을 소개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3:25). 여기서 ‘화목제물’은 헬라어로 ‘힐라스테리온’(ἱλαστήριον)이며, 구약에서 지성소의 속죄소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대속죄일마다 대제사장이 피를 뿌리던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진노가 만족되는 장소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그 속죄소가 되셨고, 그 피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완전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 문장에서 '되셨습니다'를 '되셧습니다'로 오타 표기함)

이것이 복음입니다.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친히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되었고, 동시에 죄인은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이 의로우실 뿐 아니라,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분이십니다(3:26).

자랑할 데가 없고 차별도 없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요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3:27). 이 말씀은 인간의 모든 자랑을 무너뜨립니다. 자랑이 있을 수 없는 이유는, 구원이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우리 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그 통로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도 자랑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3:28)고 선언합니다. 이는 종교개혁의 핵심 구절이기도 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 말씀을 통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재발견하였고, 그 진리가 당시 교회의 타락과 왜곡을 뒤흔드는 진리의 횃불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만이십니까?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만이시냐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3:29). 복음은 민족의 벽을 허물고, 인종의 장벽을 넘는 하나님의 구원의 길입니다. 율법을 가진 유대인이나, 율법 없이 살아온 이방인 모두에게 하나님은 동일하신 분이시며,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동일한 원칙을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3:31). 바울은 복음이 율법을 무시하거나 폐기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오히려 복음은 율법이 가리키던 그 완성을 이루었으며, 율법의 본래 목적, 곧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길을 드러내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완전하게 성취한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의, 나의 자랑

로마서 3장 19절부터 31절은 복음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은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는 통로이며,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는 겸손한 순복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할 것이 없고, 차별할 것도 없습니다. 모두가 죄인이며, 모두가 은혜로 살아납니다. 이 복음 위에 우리의 믿음과 삶이 세워져야 하며, 이 진리를 따라 날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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