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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신약로마서

로마서 3:9-18

by BibleMeditation 2025.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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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장 9절부터 18절까지는 인류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진단과 같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 모두 죄 아래 있다는 선언을 시작으로, 구약 성경의 다양한 구절을 인용하여 인간의 본성과 현실을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본질적 부패를 부정하지 않고 직면하게 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소망임을 고백하게 만듭니다.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3:9). 여기서 '죄 아래 있다'는 표현은 단순히 죄를 지었다는 정도의 의미를 넘어서, 죄의 권세 아래 놓여 있다는 영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헬라어로 '죄 아래 있다'는 말은 ‘후포 하마르티안’(ὑφ᾽ ἁμαρτίαν)으로, ‘죄의 지배 아래 있다’는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죄가 단순히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인류 전체를 지배하는 실체이며 권세임을 나타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죄의 영향력 아래 태어나며, 그 삶 전반이 죄의 지배 아래서 이루어집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적용합니다. 유대인이 율법을 가졌다고 해서, 이방인이 도덕적 양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누구도 죄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모두가 죄 아래에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결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선언은 우리가 복음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기초가 됩니다. 만일 사람이 본래 선하고, 어느 정도의 자력으로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할 수 있다면, 복음은 단지 도우미일 뿐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합니다. 복음은 우리의 연약함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완전히 무능하고 부패했으며, 그 어떤 선한 행위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죄악상

바울은 10절부터 18절까지, 총 여섯 편의 구약 말씀을 연속적으로 인용하며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증언합니다. 이 구절들은 인간의 지성과 의지, 말과 행동, 존재 전체가 죄로 오염되었음을 폭로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3:10). 이 구절은 시편 14편과 53편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기준 앞에서는 불의하다는 선언입니다.

'의인'(디카이오스, δίκαιος)은 단지 도덕적으로 착한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의인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사는 자,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 모든 인간은 불의하고 어두운 존재일 뿐입니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3:11).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깨달을 수 없고, 하나님을 찾을 의지도 없습니다. 철학이나 종교가 인간의 탐구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성경은 정반대의 결론을 말합니다. 인간은 진리를 외면하고, 자기 만족과 자기 신을 향해 나아갈 뿐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은 자기 의를 위한 종교적 행위일 뿐입니다.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3:12). 여기서 ‘치우쳤다’는 표현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지만, 죄로 인해 그 목적과 방향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모든 인생은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자기 중심적 존재로 살아갑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선언은, 인간의 윤리적 시도조차도 하나님의 기준 앞에서는 불완전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인간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은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3:13-15). 이 표현들은 시편과 이사야의 말씀에서 인용된 것으로, 죄가 인간의 말과 행동 전반을 어떻게 파괴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라는 표현은 내면에 있는 부패가 그대로 드러나는 상태를 말합니다. 무덤은 겉으로는 감춰져 있지만 그 안은 썩은 시체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열려 있다는 것은, 인간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 내면의 부패함이 밖으로 그대로 드러난다는 의미입니다. 혀는 속임수를 일삼고, 입술은 독을 품고 있으며, 발은 폭력과 파괴로 향합니다. 인간은 타인의 생명을 돌보는 자가 아니라, 자기 유익을 위해 피를 흘리며 짓밟는 자가 된 것입니다.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3:16-18). 인간의 길은 평강이 없습니다. 참된 평화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기에, 인간은 함부로 살고 함부로 말하며, 자기 욕망을 따라 살아갑니다. (이 문장에서 '말하며'를 '맇하며'로 오타 냄)

바울은 이 인용들을 통해 인간의 전적 부패를 가감 없이 폭로합니다. 마음도, 생각도, 언어도, 행동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정죄의 대상입니다. 이 선언은 우리 자아의 교만을 무너뜨립니다. 인간은 구원의 희망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살 길이 전혀 없습니다.

죄 아래 있는 자의 복음적 처방

이 말씀은 단지 정죄와 절망의 선언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토록 철저하게 인간의 타락을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 선언이 복음의 필요성과 능력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이 정도로 무너져 있다는 사실을 직면해야, 십자가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단락 이후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을 의롭다 하시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인간의 상태를 명확히 하고 넘어갑니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을 오용하지 않게 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약한 자를 돕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먼저 자신을 깊이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 없이 살고 있었는지, 내 마음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나의 말은 생명을 살리는 도구인지, 아니면 상처와 파괴를 일삼는 도구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내 안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단지 자책과 절망으로 끝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절망을 넘어 복음 앞에 무릎 꿇으라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오직 의인은 없고, 오직 은혜로만 의롭게 될 수 있음을 선포하는 진리 앞에, 우리는 겸손히 나아가야 합니다.

결론: 죄의 깊이 속에서 드러나는 은혜의 광대함

로마서 3장 9절부터 18절은 인간의 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진단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필요하고 소중한지를 깨닫게 하는 복음의 기초입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 인간의 전적 부패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하나님의 구원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선언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선함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있습니다. 죄를 정면으로 직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복음의 능력을 온전히 붙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무릎 꿇고, 다시 한 번 오직 은혜로만 서게 되는 참된 믿음의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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