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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신약로마서

로마서 2:17-29

by BibleMeditation 2025.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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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유대인, 마음에 새겨진 율법

로마서 2장 17절부터 29절은 유대인의 정체성과 신앙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바울은 율법을 소유한 것과 실제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 사이의 괴리를 날카롭게 지적하며,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진 율법과 성령의 역사로 나타남을 강조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경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만듭니다.

율법을 자랑하지만 그 뜻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

바울은 먼저 유대인의 자부심을 언급합니다.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그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율법에 있는 것을 배운 대로 연단을 받아..."(2:17-18).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율법에 두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고, 이방인과 구별된 선민의식 속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어서 그들이 실제로는 그 율법을 어기며 살아가고 있음을 고발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2:21). 말하자면, 그들은 말씀을 가르치지만 그 말씀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전파하지만 그 말씀의 권위 아래 순복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인의 위선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자랑하다'(카우카오마이, καυχάομαι)입니다. 이는 단순히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에 대해 자기 의와 자긍심을 갖는 태도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자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상 그 자랑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라는 형식을 자신들의 우월함의 근거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삶을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이는 단지 개인의 도덕성에 대한 질문이 아닙니다. 율법을 소유한 자로서의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율법을 가졌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다는 것은 특권이지만 동시에 무거운 책임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책임을 망각하고, 율법을 자랑하면서 실상은 율법을 욕되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로 인해 바울은 가장 충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2:24). 이는 에스겔 36장의 말씀을 인용한 구절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다는 고발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고, 직분을 갖고, 말씀을 알고 있지만, 우리의 삶이 그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겉모양의 한례가 아니라 마음의 한례

바울은 이어서 유대인의 또 다른 자부심인 ‘한례’에 대해 언급합니다. “네가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면서 율법을 자랑하느냐? 네가 한례를 자랑하느냐?” 바울은 겉으로 받은 한례가 그 자체로 유익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한례가 유익하나 네가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면 네 한례는 무한례가 되느니라”(2:25).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한례’(페리토메, περιτομή)는 아브라함의 언약의 표징이자 유대인의 신앙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그러나 그 표징이 마음의 실체와 분리될 때,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외식이 됩니다. 이는 마치 세례를 받았지만 그 삶이 세례의 의미와 무관한 것과도 같습니다. 외적인 종교 의식이 곧 구원의 보증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의식의 의미를 삶으로 살아낼 때에만 진정한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주 도전적인 진술을 덧붙입니다. “만일 무한례자가 율법의 요구를 지키면 그 무한례를 한례와 같이 여길 것 아니냐?”(2:26). 이는 유대인의 정체성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에 순종한다면, 오히려 진짜 유대인보다 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혈통이나 민족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와 믿음의 실천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입니다.

 

바울은 결정적으로 선언합니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한례가 한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한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2:28-29). 이는 신약 성경 전체에서 가장 신학적으로 깊은 구절 중 하나입니다. 진짜 유대인은 외적인 정체성으로 구별되는 자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 자입니다.

 

여기서 '마음의 한례'라는 표현은 신명기 30:6에서 이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한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네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바울은 이 구약의 약속을 성취된 것으로 보고, 이제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내면의 변화를 중심으로 신자의 정체성을 정의합니다.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는 자

결론적으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참된 신자는 사람에게 인정받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입니다.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며 우리는 얼마나 사람의 시선을 의식합니까? 누가 더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누가 더 성경을 많이 아는지, 누가 더 신령하게 보이는지를 기준 삼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그 마음이 하나님 앞에 열려 있는지를 보십니다.

 

이 말은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과 동시에 위로를 줍니다. 두려움은 겉모습이 아니라 중심이 기준이라는 점에서 오는 긴장이고, 위로는 비록 내가 사람에게는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아시고 기억하신다는 점에서 오는 안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신앙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마음에 새겨진 율법을 따르는 삶이며,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 사는 삶입니다. 참된 유대인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삶으로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는 자입니다.

 

결론: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라

로마서 2장 17절에서 29절은 유대인의 정체성에 대한 경고를 통해, 모든 신자에게 영적 본질로 돌아가라고 촉구합니다. 겉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고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실제 삶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위선에서 돌이키라는 외침입니다. 하나님은 외적인 신앙이 아니라 중심의 진실함을 보십니다. 마음의 한례를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서 하나님께 칭찬받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참된 신자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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