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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신약로마서

로마서 3:1-8

by BibleMeditation 2025.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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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실하심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로마서 3장 1절부터 8절은 유대인의 특권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그리고 인간의 불의 속에서도 드러나는 하나님의 의에 대해 바울이 철저하게 논증하는 본문입니다. 이 짧은 단락 속에는 복음의 본질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진리의 핵심이 녹아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진실하심에 의지하는 믿음의 자리에 서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유대인의 특권은 무엇인가?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3:1). 바울은 2장에서 유대인의 위선을 지적하고 외적인 한례가 아닌 마음의 한례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으로서의 특권은 무의미한 것인가? 바울은 이 질문에 대해 단호히 “범사에 많다”고 답합니다. 특히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3:2).

바울은 유대인의 본질적인 특권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점에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맡았다’는 표현은 헬라어로 ‘피스튜오’(πιστεύω)의 수동형 개념에 해당하는 단어로, 단순한 보관이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위임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그들에게 주신 이유는 단지 특권의 상징이 아니라, 계시를 맡은 청지기로서의 사명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이 특권을 사명으로 여기지 않고, 자랑과 우월함의 근거로 삼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사실은 유대인에게 큰 축복이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무거운 책임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가 말씀을 알고, 교회에 속해 있고, 복음을 들을 기회가 많다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심판의 기준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사람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가?

3절에서 바울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믿지 않은 자들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무효가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그럴 수 없느니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그리고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며, 하나님의 진실하심이 인간의 거짓과 불의 속에서도 여전히 유지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하는 “그럴 수 없느니라”(μη γένοιτο)는 헬라어로 ‘메 게노이토’라는 매우 강한 부정 표현입니다. 문자적으로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강한 거부의 의미입니다. 이는 바울이 자신의 독자들에게 자주 사용하는 표현으로, 복음 진리와 반대되는 주장을 단호하게 배격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바울은 시편 51편 4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다윗이 바세바 사건 후 회개하면서 드린 고백입니다. 사람의 죄악 속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공의와 진실하심을 드러내십니다. 이는 인간이 얼마나 부패하고 불성실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진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신학적 확신입니다. 우리 신앙의 토대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실하심은 인간의 상태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죄악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더 명확하게 드러내는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고 해서, 죄가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바울은 이런 논리를 미리 경계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3:5) 이는 가상의 반론을 상정한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가 죄를 통해 드러난다면, 그 죄는 선한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 아니냐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바울은 다시 한 번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고 선언합니다. 만약 그런 논리가 정당하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결론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불의로부터 분리된 분이시며, 죄를 도구로 사용하시긴 하지만 결코 죄를 용인하시거나 묵인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정당하며, 인간은 결코 자신의 죄를 하나님의 의로 포장할 수 없습니다.

 

악을 행하여 선을 이루자는 자들에 대한 심판

바울은 마지막으로 매우 위험한 주장을 반박합니다.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3:8). 이것은 복음을 오해하고 왜곡한 자들이 주장한 내용입니다. ‘복음은 은혜다, 그러므로 죄를 지어도 괜찮다’, ‘오히려 죄를 더 지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게 드러난다’는 식의 비뚤어진 사고입니다.

 

이 주장은 당시 바울이 전한 복음이 얼마나 강력한 은혜의 복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그리고 율법의 행위가 아닌 은혜에 근거한 구원을 강조하다 보면, 일부 사람들은 그 복음을 곡해하여 방종의 구실로 삼으려는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그들은 정죄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복음은 방종의 면허가 아닙니다. 복음은 죄를 가볍게 여기는 길이 아니라, 죄를 뼈저리게 인식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도록 하는 능력입니다. 은혜는 죄를 덮는 수단이 아니라, 죄를 끊어내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자는 결코 죄에 머물 수 없습니다. 그 은혜가 너무 커서, 우리는 죄를 미워하고 멀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이 짧은 단락을 통해 신자들에게 복음의 본질과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인간의 불의에도 불구하고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그 신실하심 안에서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오용하여 죄에 머무르려 하는 자는 오히려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 하나님의 진실하심 위에 세워진 믿음

로마서 3장 1절에서 8절은 복음의 깊이를 단단하게 다지는 기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특권, 인간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그리고 그릇된 은혜 이해에 대한 바울의 명쾌한 논박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의 본질에 더 깊이 다가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진실하심은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우리는 그 위에 믿음을 세워야 합니다. 사람의 죄와 불의는 하나님의 영광을 손상시키지 못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기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그 진실하심에 의지하여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은혜 안에 거하되 죄를 떠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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