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보다 먼저 온 믿음의 의
로마서 4장 9절부터 12절은 아브라함의 의로움이 언제 주어졌는지를 통해 복음의 본질을 다시금 강조하는 본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자랑하던 한례, 곧 외적인 언약의 표식보다도 앞선 것이 믿음이며,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하셨다는 진리를 선포합니다. 바울은 이 본문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을 허물며,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하나님의 구원을 명확히 드러냅니다.
아브라함의 의로움은 한례 이전에 주어졌다 (4:9-10)
바울은 9절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4:9). 이 '복'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앞 구절에서 다윗이 말했던 것처럼, 죄가 사함 받고, 불법이 가려지고, 하나님께서 그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는 그 놀라운 복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복이 자신들에게만 해당된다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한례를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도전합니다. "어떻게 의로 여겨졌느냐? 한례 때냐 무할례 때냐? 한례 때가 아니요 무할례 때니라"(4:10). 이 말씀은 창세기의 역사적 순서를 근거로 한 논증입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한례는 그보다 후에, 창세기 17장에서야 명령을 받습니다. 시간상으로도 믿음이 먼저였고, 한례는 그 믿음 이후에 주어진 것입니다.
이 사실은 유대인의 종교적 자부심에 큰 도전이었습니다. 그들은 한례를 통해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신했고, 그것이 곧 구원의 표지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명확하게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 하신 것은, 그가 한례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한례는 그 믿음의 결과이지,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이 선언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매우 중요한 진리를 말해줍니다. 우리는 외적인 종교 행위나 전통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습니다. 세례, 성찬, 교회 출석과 같은 신앙의 형식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은 구원의 근거가 아닙니다. 믿음이 없다면, 어떤 형식도 그 사람을 하나님 앞에 의롭게 만들 수 없습니다. (이 단락에서 '관계를'을 '괄계를'로 오타 표기)
할례는 믿음의 인침이다 (4:11)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한례의 본질을 설명합니다. “그가 한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4:11). 여기서 ‘표’(헬라어: σημεῖον, 세메이온)는 외적인 표시를 의미하고, ‘인침’(σφραγίς, 스프라기스)은 공적인 인증, 보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한례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주어진 의를 외적으로 드러내는 표시였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그의 내면에서 일어난 믿음의 반응 때문이며, 한례는 그것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언약의 표지였습니다. 다시 말해, 한례는 믿음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수단이 아니라, 믿음을 확인하는 표시입니다. 이것은 복음의 핵심 원리를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항상 내면에서부터 시작되며, 외적인 형식은 그것의 열매이지 조건이 아닙니다.
이 진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세례는 믿음의 고백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표입니다.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구원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따라 믿음을 고백한 자에게 주어지는 인침입니다. 바울이 말하듯, 한례는 믿음의 인침이요, 의로움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은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본질은 형식보다 본질, 곧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믿음입니다.
바울은 이 논리를 통해 한례에 대한 오해를 교정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자신들이 율법과 한례를 지킴으로써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아브라함의 삶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보신 것은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울의 논리를 따른다면, 외적 형식에 안주하지 않고 내면의 믿음을 돌아보는 삶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다 (4:11-12)
바울은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는지를 밝힙니다. “이는 무할례 시에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에게도 의로 여김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4:11). 아브라함은 단지 유대인의 조상이 아닙니다. 한례를 받지 않았으나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또한 바울은 덧붙입니다. “또 한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한례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니라”(4:12). 유대인들 가운데서도 단지 한례를 받은 자가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진정한 그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취’라는 단어는 헬라어 ‘ἴχνος’(이크노스)로, 발자국이나 흔적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지 외적인 모방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하고 따랐는지를 삶의 방식으로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참된 유대인은 단순히 육체의 표식을 지닌 자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 사는 자입니다.
이 말씀은 이방인에게는 위로를, 유대인에게는 도전을 줍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문을 열어주셨고, 유대인에게는 믿음 없는 형식주의를 경계하시며 진정한 회개와 믿음을 촉구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불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믿음의 혈통을 잇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민족이나 배경, 전통이나 의식에 따라 사람을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언제나 중심의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진리를 통해 복음이 유대인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복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결론: 믿음의 발자취를 따르는 삶
로마서 4장 9절부터 12절은 외적인 종교 행위가 아니라, 중심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복음의 본질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아브라함은 한례받기 전에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그 믿음을 따라가는 모든 자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합니다. 종교의 외형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입니다. 형식이 아닌 본질, 행위가 아닌 은혜, 한례가 아닌 믿음—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며, 우리가 걸어가야 할 복음의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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