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
로마서의 마지막 장은 인사말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단순한 안부를 넘어서 복음 공동체 안에서의 신앙적 유산, 관계의 깊이,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중 오늘 살펴볼 로마서 16장 13절, 단 한 구절은 한 사람의 이름과 그의 어머니에 대한 짧은 언급에 불과하지만, 이 말씀 안에는 복음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그 가족 전체를 어떻게 품으셨는지를 보여주는 복된 증언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루포와 그의 어머니를 통해 신앙의 전승, 교회의 돌봄, 하나님의 택하심이라는 복음의 깊은 진리를 묵상하게 됩니다.
주께 택하심을 입은 루포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루포는 성경에서 한 번 더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마가복음 15장 21절에 보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된 인물로 유명합니다. 마가는 독자들에게 시몬이 누구인지를 설명하며, 그의 아들들인 ‘알렉산더와 루포’를 언급합니다. 이는 당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 두 사람이 이미 널리 알려진 신앙인이었음을 전제한 기록입니다.
로마서 16장 13절에 등장하는 이 루포가 바로 그 시몬의 아들 루포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렇다면 이 루포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십자가를 대신 졌던 경험을 기억하며 성장한 신앙의 2세대입니다. 아버지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복음에 접한 가정이 이후에도 믿음으로 살아가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영향력을 끼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신앙의 유산이 단절되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는 귀한 본보기를 보여줍니다.
바울은 루포를 가리켜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훌륭한 성도’라는 정도의 칭찬이 아니라, 깊은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택하심을 입은 자’는 헬라어로 ‘ἐκλεκτός(에클렉토스)’로,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예정하시고, 은혜로 부르셔서 구원의 반열에 세우신 자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4절에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말하며, 이 택하심이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임을 강조합니다.
루포는 단지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택함을 입은 자로서 교회 안에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신앙 원리를 다시 되새겨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노력이나 열심만으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 그 은혜의 결정이 우리의 믿음을 시작하게 했고, 지금도 그 은혜로 우리는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자신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택하시고 붙드시는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교회의 어머니가 된 한 여인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이 말씀은 단순히 바울이 그 여인의 자녀라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 혈연관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녀를 ‘자기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이는 초대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영적 돌봄과 관계의 깊이를 보여주는 놀라운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헬라어 원문상 매우 따뜻하고 인간적인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라는 말은 곧, 그 여인이 바울을 어머니처럼 돌보았고, 실제로 어머니 같은 사랑을 실천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밥을 챙겨주고 생활을 도운 차원이 아닙니다. 바울은 선교 여정 속에서 수많은 박해와 수고를 겪었고, 그런 가운데 돌봄과 위로가 절실했을 때 이 여인의 헌신적인 섬김이 큰 위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단지 모여서 예배만 드리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돌보고, 필요를 채우며, 가족처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는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생물학적인 가족이 없어도, 믿음 안에서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며, 자녀가 되고 형제가 되는 공동체.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가족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 여인은 루포의 어머니였지만, 바울에게는 ‘신앙의 어머니’였습니다. 바울이 그녀를 기억하며 로마서 마지막 인사 가운데 그녀의 이름을 기록한 것은 그 섬김이 단지 감정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기억되어야 할 영적 헌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는 수많은 루포의 어머니들이 계십니다. 목회자와 선교사, 연약한 지체들 곁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밥을 짓고, 물질을 섬기며, 눈물을 흘리는 분들. 하나님은 그들의 이름을 모르지 않으시고, 그 수고를 결코 헛되이 하지 않으십니다. 교회가 진정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어머니’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젊은 이들을 품고 기도하며, 위로하며, 교회 안에서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가는 일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복음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
루포와 그의 어머니의 이야기는 단지 한 가족에 대한 인사가 아닙니다. 이 짧은 구절은 복음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부르시고, 관계를 세우며, 교회를 이루어 가시는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루포는 택하심을 입은 자로서 교회 안에 세워졌고, 그의 어머니는 단지 혈연을 넘어선 ‘영적 어머니’로서 바울을 돌보았으며, 교회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만들어내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뿐 아니라, 서로 간의 벽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가족이 되게 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종과 자유인, 남성과 여성을 초월한 새로운 공동체. 거기에는 성령 안에서 맺어진 믿음의 친밀함과 섬김이 자리합니다. 루포의 어머니가 바울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이 단순한 문장은 바로 그런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요약해줍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교회가 단순히 ‘모이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으로 세워지는 곳임을 다시금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공동체 안에 택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서로 돌보게 하시며, 믿음의 역사를 이어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역사에는 이름 없는 이들의 기도와 사랑이 함께 기록됩니다.
결론
로마서 16장 13절은 단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인사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신앙의 유산이 어떻게 계승되는지, 하나님의 택하심이 어떤 의미인지,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영적 관계가 얼마나 귀한지를 보여주는 복음적 증언입니다. 루포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섬겼고, 그의 어머니는 바울의 생애를 감싸 안은 따뜻한 손길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름 없는 자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셨고, 지금도 그렇게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이 믿음의 계보 안에 서서, 하나님의 택하심에 감사하며,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어주는 섬김으로 복음 공동체를 함께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교회는 참된 가족이 되고,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이 우리의 삶 가운데 깊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6장 구조
'신약성경 > 신약로마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16:17-18 강해, 복음을 거스르는 자들 (0) | 2025.04.06 |
---|---|
로마서 16:17-20 강해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 (0) | 2025.04.06 |
로마서 16:3-5 강해,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복음 헌신 (0) | 2025.04.06 |
로마서 16:1-2 강해, 뵈뵈를 환대하라 (0) | 2025.04.06 |
로마서 16:1-16 강해,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 (0) | 2025.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