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내어놓은 동역자 –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복음 헌신
우리가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여정 속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리는, 하나님께서 그 사역을 혼자 감당하게 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함께 싸우는 동역자를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16장 3절에서 5절은 바울 사역의 여정 속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귀한 동역자,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의 이름을 소개합니다. 그들은 이름 없는 배경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생명까지도 책임졌던 자들이며, 교회를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놓은 복음의 일꾼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동역의 의미와 교회 안에서의 헌신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깊이 배우게 됩니다.
복음의 사역을 위해 부르심받은 부부
3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여기서 바울은 이 부부를 단지 ‘친한 사람’, ‘좋은 성도’가 아니라, ‘동역자’라고 부릅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로 ‘συνεργός(쉬네르고스)’인데, 함께 일을 한다는 의미를 넘어, 동일한 사명을 가진 자로서 함께 싸우는 전우를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협력자가 아닌, 목숨을 걸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자라는 뜻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 만난 유대인 부부로, 당시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유대인 추방령으로 로마를 떠나 고린도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행 18:1-3). 바울은 그들과 직업도 같아(천막을 만드는 자) 함께 일하며 복음을 나눴고, 곧이어 복음 사역의 깊은 동역자로 발전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직업상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삶을 함께 나누고, 함께 고난당하며, 교회를 세우는 데 헌신한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부부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사역의 기반이 단지 사람 간의 정이나 필요가 아닌, 철저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시작되고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교회 안에서의 모든 관계와 사역은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지는 것이어야 하며, 그것이 곧 공동체를 바르게 세우는 토대가 됩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갈 때도 동행했고(행 18:18), 그곳에서 아볼로라는 유능한 설교자를 만나 복음의 진리를 더욱 정확히 가르쳐주는 사역도 감당했습니다(행 18:26). 이처럼 이 부부는 특정 교회에만 머물지 않고, 복음을 따라 움직이며 그 어디서든 교회를 세우는 자들이었습니다.
생명을 내어놓는 헌신의 실천
4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이 구절은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헌신이 단순한 말이나 의도에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바울의 생명을 구하는 데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여기서 ‘자기들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다’는 표현은 헬라어로 ‘τὸν ἑαυτῶν τράχηλον ὑπέθηκαν(톤 에아우톤 트라켈론 휘페테칸)’으로, 말 그대로 ‘자기 목을 내주었다’, 즉 죽음을 각오하고 앞장섰다는 뜻입니다. 이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안위를 뒤로하고, 바울을 대신하여 죽음을 무릅썼다는 강한 표현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 하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결코 안전하거나 평안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바울과 같은 지도자는 언제든지 유대인들의 반대와 로마의 감시 아래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 부부는 단지 조언하거나 기도만 해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생명을 건 행동으로 바울을 지켰습니다.
바울은 이 부부의 헌신이 개인적으로만 감사할 일이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단지 예의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바울이 살아 있었기에 이방 세계에 복음이 전파될 수 있었고, 그 일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자가 브리스가와 아굴라였기 때문에, 이방 교회 전체가 그들에게 빚을 진 셈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명이 그들의 희생 위에 유지되었고, 그것이 다시 이방인을 향한 복음의 확장으로 이어졌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확장시키는 데에 단 한 사람의 힘만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바울이라는 위대한 사도가 있었지만, 그의 뒤에는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놓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헌신은 조용했지만, 복음의 역사를 이루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수고와 눈물로 세워져 갑니다.
교회를 위한 가정, 하나님 나라의 기초
5절 전반부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저희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이는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단지 바울의 사역만 돕는 조력자였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의 공간을 교회로 개방하며 실제로 공동체를 세우는 주체였음을 보여줍니다. 초대교회는 별도의 예배당 건물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경우 가정에서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이 부부의 집은 언제나 교회를 위한 열린 공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교회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묻게 됩니다. 교회는 단지 건물이나 제도가 아니라, 복음을 따라 헌신한 자들의 삶 그 자체 안에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은 물리적인 장소였지만, 그 속에는 예배가 있었고, 교제가 있었고, 가르침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곧 하나님 나라의 실제적인 표현이 그 집 안에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이 부부의 삶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가정에게도 깊은 도전을 줍니다. 오늘 우리 가정은 과연 하나님 나라를 담는 그릇이 되고 있는가? 교회는 주일 한 시간의 공간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우리의 집도, 우리의 일터도, 우리의 관계도 복음을 담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처럼 삶의 공간을 교회로 바꾼다는 것은 단지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 전체가 하나님을 위한 제단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그 집에 모이는 공동체 전체에도 문안합니다. 이는 단지 개인을 향한 감사가 아니라, 그들의 헌신을 통해 세워진 공동체 전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교회는 한두 사람의 열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공동체가 함께 엮여서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이야기는 단순한 부부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교회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됩니다.
결론
로마서 16장 3절부터 5절은 초대교회의 한 단면을 조명해주는 말씀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바울의 동역자로, 복음을 위해 생명을 내어놓은 자들이며, 자신의 집을 교회로 내어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복음을 따르는 자의 구체적인 모습이었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의 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교회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어떤 동역자가 되어야 할지를 이 말씀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복음은 혼자의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함께 싸우는 동역자를 세워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누군가의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도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는 데 사용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삶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로마서 16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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