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으로 세워진 관계, 교회를 이루는 이름들
로마서의 마지막 장은 바울의 인사말로 시작됩니다. 많은 이들이 이 부분을 단순한 인사 목록 정도로 생각하고 쉽게 지나치지만, 사실 이 말씀 안에는 복음이 사람을 어떻게 세우는지, 교회를 어떻게 이루는지에 대한 깊은 신학적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름 하나하나에 바울과의 관계, 복음에 대한 헌신,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눈물겨운 동역이 녹아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이름들을 통해 교회가 어떻게 복음 위에 세워지고, 서로의 헌신이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로 연결되는지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복음을 전한 바울, 복음을 품고 섬긴 뵈뵈
바울은 로마서 마지막 장을 시작하며, 한 여인을 소개합니다. 1절과 2절을 보면 “내가 갱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에게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주라”고 말합니다. 이 뵈뵈라는 여인은 아마도 로마서를 실제로 로마 교회에 전달한 사람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녀를 ‘일꾼’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말은 헬라어로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로, 본래는 ‘집사’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뵈뵈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공식적 직분의 집사’였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실질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는 점입니다. 더불어 바울은 그녀를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보호자’는 헬라어 ‘프로스타티스(προστάτις)’인데, 이는 후원자, 돌보는 자, 지도자의 의미를 포함한 단어입니다. 그녀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었습니다. 바울과 수많은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도움과 지지를 제공했던 영향력 있는 신실한 여인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 편지를 보내며, 그들에게 뵈뵈를 영접하고 필요를 채워주라고 부탁합니다. 이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복음 안에서 서로를 향한 영적 책임과 사랑의 실천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을 환대하고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뵈뵈는 그러한 섬김의 첫 번째 모델로 우리 앞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복음의 동역자로 세워진 이름들
이후 바울은 연이어 복음 사역의 동역자들을 이름 하나하나 불러가며 인사합니다. 그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브리스가와 아굴라입니다. 이 부부는 바울의 사역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동역자들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나의 생명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어놓은 자들”이라고 소개합니다(3-4절). 이는 단순히 좋은 사람, 성실한 신앙인이라는 평가를 넘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복음을 위해 헌신했던 이들이라는 고백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 보면 이 부부는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위해 삶 전체를 내어놓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바울은 ‘그들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고 말합니다. 초대교회는 대부분 가정교회 형태였고,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자신의 집을 예배의 장소로 열었던 헌신의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거룩한 통로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주일에 예배만 드리는 신앙이 아니라, 매일의 삶이 교회가 되고, 집이 복음의 전진기지가 되는 그런 신앙이야말로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바울은 또 다른 동역자들—에배네도, 마리아,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암블리아, 우르바노, 스다구 등—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이들 중 일부는 유대인이고, 어떤 이는 이방인이며, 일부는 바울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믿은 자들이고, 어떤 이는 감옥에서 함께 고난을 받은 자들이며, 어떤 이는 단지 ‘주 안에서 사랑하는 자’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특히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 대해 바울은 “사도 중에 존경을 받는 자요,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말합니다(7절). 이들이 부부였는지, 친척이었는지, 정확한 관계는 명확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교회 안에서, 바울의 사역 이전부터 그리스도를 따르며 존경받는 신앙인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의 시대에도, 그리스도를 향한 헌신은 오직 바울과 같은 ‘유명한 자들’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름이 자주 등장하지 않는 이들, 그러나 깊이 있게 주님을 섬긴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인사하며, 종종 이들의 성품이나 헌신을 간략히 소개합니다. ‘수고한 자’, ‘인정받은 자’, ‘사랑하는 자’, ‘같이 있는 자’, ‘주 안에서 있는 자’ 등. 이러한 표현들 안에는 바울의 따뜻한 애정과 복음 공동체의 관계가 담겨 있습니다. 교회는 이름 없는 자들, 알려지지 않은 자들의 수고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고 하여 그들의 헌신이 작았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름을 기억하시고, 그 수고를 결코 헛되이 하지 않으십니다.
거룩한 입맞춤과 그리스도의 교회
16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이 말씀은 단순히 당대 문화적 인사의 형식을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입맞춤’이라는 표현은 복음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의 순결한 사랑과 우애를 상징합니다. 교회는 단지 예배당에 함께 있는 집단이 아니라, 복음으로 새롭게 태어난 가족입니다.
여기서 ‘거룩한’이라는 수식어는 매우 중요합니다. 입맞춤이라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복음 안에서 정결한 관계를 전제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문안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공동체의 연합과 사랑의 표식입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하나 되었기에 서로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거룩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전합니다. 로마 교회는 고립된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여러 지역의 교회가 서로 기도하며 연대하고 있었고, 바울은 그 연합의 중심에서 이들을 하나로 묶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는 단지 로컬 공동체가 아니라, 보편적 교회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전 세계 교회와 함께 연합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복음의 연대를 의식하며 살아야 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격려하고, 섬겨야 합니다.
결론
로마서 16장 1절부터 16절까지는 단순한 인사말이 아닙니다. 이 본문은 복음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동역자로 세우는지를 보여줍니다. 뵈뵈, 브리스가와 아굴라, 그리고 수많은 이름 없는 동역자들. 그들은 바울의 사역을 함께 감당한 지체들이었고, 그들의 섬김과 헌신은 오늘 우리에게도 귀한 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름 없는 자들의 수고를 결코 잊지 않으시며, 교회는 그러한 사람들로 인해 세워지고 성장합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기억 속에 남을 이름으로, 복음과 교회를 위해 살아가기를 다짐합시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복음으로 묶인 이름들이며, 그 이름 속에는 우리의 믿음의 역사와 주님의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로마서 16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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