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이른 의, 행위로 실족한 자들
로마서 9장의 마지막 단락에 이르러 바울은 이방인과 이스라엘의 구원 현실을 비교하며,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났는지를 설명합니다. 로마서 9장 30절부터 32절은 인간의 자랑과 율법적 의의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선포하며 구원의 핵심을 명확히 드러냅니다. 이제 믿음과 행위에 대한 것이 무엇인지를 좀더 깊이 들어가 묵상해 봅시다.
의를 구하지 않은 이방인의 역설적인 구원
바울은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이는 독자들의 사고를 전환시키는 전형적인 바울의 화법입니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선언은 놀라운 반전의 진술입니다.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롬 9:30). 이 말씀은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충격적인 진술입니다. 율법도 없고, 계시도 없으며, 제사 제도와 언약도 갖지 않았던 이방인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의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를 따르지 않았다"는 표현은 그들이 처음부터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고자 노력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이방인들은 본래 하나님의 율법을 모르고 살았고, 구원의 언약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들었고, 그 복음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얻은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구원을 설명하면서, "믿음에서 난 의"(ἐκ πίστεως δικαιοσύνη, 엑 피스테오스 디카이오쉬네)를 강조합니다. 이는 로마서 1장 17절에서 처음 등장한 표현으로, 바울 복음의 요약입니다. 구원은 율법의 행위에서 나지 않고, 오직 믿음에서 나온다는 선언입니다. 이방인은 율법도 없고 전통도 없었지만, 복음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의에 도달했습니다. 이 사실은 구원이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에 기반하며, 인간의 배경이나 조건이 결정적 요소가 아님을 명백히 드러냅니다.
이방인의 구원은 단순한 행운이나 우연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이 처음부터 이방인 가운데 긍휼의 그릇을 준비하셨고, 복음을 통해 그들을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바탕으로 이방 교회들을 향해 교만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동시에 감사로 반응할 것을 촉구합니다.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은 나의 무엇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의를 추구한 이스라엘의 실패
이방인의 구원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실패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롬 9:31). 이 말은 매우 아이러니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고, 그것을 철저히 지키고자 노력했던 민족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열심히 추구한 의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바울은 그 이유를 32절에서 명확하게 밝힙니다.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그들이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이스라엘의 실패는 단지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신앙의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고자 했고, 그들의 행위를 의의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의는 믿음으로 받는 선물이지, 인간의 노력으로 쌓아올리는 결과가 아닙니다.
여기서 '부딪힐 돌'(λίθῳ τοῦ προσκόμματος, 리토 투 프로스코μ마토스)은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이 돌은 어떤 이에게는 구원의 기초가 되지만, 어떤 이에게는 걸림돌이 됩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대했지만, 정작 오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고, 그분을 걸림돌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오히려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구원의 길에서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이 장면은 매우 비극적입니다. 율법을 알았고, 말씀을 가까이 했으며,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려온 민족이 정작 구원의 실체 앞에서는 걸려 넘어졌다는 사실은, 인간의 종교적 열심이 구원의 보증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에 이를 수 있습니다. 행위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실패를 단지 정죄의 근거로 삼지 않습니다. 그는 이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속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밝히며, 남은 자에 대한 소망과 이방인의 구원이라는 더 큰 그림을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복음 앞에 모두가 동등한 자로 선다
바울이 로마서 9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주제는 바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입니다. 이방인도, 유대인도, 모두가 하나님 앞에 동일한 조건 아래 놓여 있으며, 모두가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진리는 복음의 본질을 드러내며, 우리의 자랑을 무너뜨립니다.
로마서 9장 30절부터 32절은 복음의 공평함과 은혜로움을 선포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율법을 아는 자나 모르는 자나, 복음을 통해 동일한 구원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복음은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초청이며, 믿는 자에게만 열리는 생명의 길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도전은 분명합니다. 나는 무엇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서고 있는가? 혹시 나도 이스라엘처럼 나의 열심이나 행위, 신앙생활의 모양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며, 나는 그 은혜 앞에 빈 손으로 설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결론
로마서 9장 30절부터 32절은 복음의 핵심,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의를 추구하지 않았던 이방인은 믿음으로 의에 이르렀고, 율법을 따랐던 이스라엘은 행위에 의지하다가 실족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내가 누구를 믿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만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설 수 있으며, 그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로 주어진 선물입니다.
로마서 9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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