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노 중에 나타나는 긍휼의 그릇
로마서 9장 19절부터 29절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간의 반발과 질문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바울은 피조물로서의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 어떤 자세로 서야 하는지를 강하게 일깨우며, 동시에 긍휼의 그릇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구속사의 계획을 설명합니다. 이 본문은 인간의 이성적 이해를 넘어서,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이 어떻게 교차하며 역사 속에서 실현되는지를 드러냅니다.
로마서 9:6–29 강해, 긍휼히 여기실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하나님께 항변하는 자여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거스르리오 하니"(롬 9:19). 이 질문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본능적인 의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어떤 자를 완악하게 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것을 주권적으로 결정하신다면, 인간에게 무슨 책임이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신학적 호기심을 넘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둘러싼 깊은 신학적 난제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질문에 논리적 해명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질문하는 자의 위치를 근본적으로 되묻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롬 9:20). 바울은 철학적 설명을 거부하고, 인간의 존재론적 위치를 명확히 규정합니다. 우리는 창조주 앞에 선 피조물일 뿐이며,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진흙과 같은 존재입니다.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롬 9:20)는 반문은 우리로 하여금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서게 만듭니다. 토기장이의 권한은 진흙을 사용하여 어떤 그릇이든 만들 자유가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일하실 권리를 부정하려는 모든 인간적 항변을 무력화시킵니다.
물론 이는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반응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본문에서 인간의 책임을 다루기보다, 하나님이 왜 어떤 자는 진노의 그릇으로, 어떤 자는 긍휼의 그릇으로 만드셨는지에 대해 하나님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롬 9:22).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그릇들이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멸망을 향해 가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예비된 대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즉시 멸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심으로 그 존재를 인내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불완전한 계획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긍휼을 드러내기 위한 섭리적 지연입니다. 왜냐하면 그 진노의 그릇들과 대조되게 등장하는 존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롬 9:23).
긍휼의 그릇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예비된 자들입니다. 이들은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준비된 자들이며, 은혜와 긍휼을 입은 존재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구원받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부르신 우리'라고 정의하며, 이는 단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힙니다(롬 9:24).
여기서 '예비하다'(προητοίμασεν, 프로에토이마센)는 단순한 예상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목적 지향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긍휼과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긍휼의 그릇을 계획하시고 부르셨으며, 이 부르심은 역사 속에서 성취되고 있다는 것이 바울의 확신입니다.
예언 속에 이미 담긴 구속사의 계획
바울은 이러한 주장을 구약의 예언들을 통해 뒷받침합니다. 그는 호세아서를 인용하여 이방인의 구원이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음을 증거합니다.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롬 9:25). 이 말씀은 호세아 2장 23절의 인용으로, 당시 하나님께서 타락한 북이스라엘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원래 하나님과의 언약을 떠났던 자들이 다시 언약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장면은, 이방인의 구원이 하나님의 놀라운 회복 계획 안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바울은 이 구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유대인만이 아니라 모든 족속 가운데서도 긍휼의 그릇들을 부르신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유대인들 가운데도 오직 남은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비록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롬 9:27). 이는 단순한 민족주의적 구원관을 부정하며, 하나님의 선택이 혈통이 아닌 은혜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바울은 이어서 이사야 1장 9절을 인용하며 말합니다.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롬 9:29). 이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멸망의 가능성 앞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만이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다는 사실을 강하게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결론
로마서 9장 19절부터 29절은 인간의 항변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 그리고 구속사의 질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선포합니다. 우리는 토기장이 앞에 선 진흙이며, 그분의 손에서 긍휼의 그릇으로 빚어졌습니다. 이 진리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이를 증거합니다. 우리는 이 은혜 앞에 침묵하고, 경외하며, 더욱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내가 구원받은 존재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긍휼의 결정이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예비된 삶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로마서 9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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