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감사하라
감사하는 삶
성경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하박국 3:17-19
감사는 대개 풍성한 식탁 가까이에 놓인 말처럼 들린다. 일이 뜻대로 풀리고, 건강한 몸으로 아침을 맞고, 사랑하는 이들과 웃을 수 있는 날에는 감사의 이유를 찾는 일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비가 오래 내리지 않아 들판의 색이 바래고, 기다리던 소식이 끝내 오지 않으며, 마음속 한 자리가 오래 비어 있을 때 감사는 너무 먼 언어처럼 느껴진다. 상실의 자리에서 감사하라는 말은 때로 아픔을 모르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삶에는 감사로 덮어 버릴 수 없는 슬픔이 있고,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이 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쓸 때, 그 교회는 평온한 번영 속에 있지 않았다. 복음은 그 도시에서 환영만 받지 못했고, 성도들은 압박과 흔들림을 겪고 있었다. 편지 안에는 죽은 성도들을 향한 애도와, 오지 않는 듯한 주의 날을 기다리는 마음도 남아 있다. 그러므로 바울의 감사는 고통을 모른 척하는 낙관의 언어가 아니다. 그는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라고 말하지만, 그 기쁨의 바닥에는 환난을 통과한 믿음과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소망이 놓여 있다.
모든 일 때문에가 아니라, 모든 자리에서
“범사에”라는 말은 모든 일이 그 자체로 선하고 아름답다는 뜻으로 읽혀서는 안 된다. 성경은 악과 죄, 죽음과 억울함을 선하다고 부르지 않는다. 십자가 앞에서 예수께서도 고난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고,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감사는 아픔의 이름을 바꾸어 부르는 일이 아니라, 아픔이 마지막 이름이 되지 못한다는 고백에 가깝다. 모든 일 때문에 감사하라는 강요가 아니라, 어떤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끊어지지 않았기에 감사하라는 부름이다.
감사는 가진 것의 목록을 세는 습관만도 아니다. 물론 작은 빛과 한 끼의 음식, 누군가의 안부와 계절의 변화를 알아보는 마음은 귀하다. 그러나 성경의 감사는 더 깊은 곳에서 시작된다. 감사는 내가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확신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통제할 수 없는 날들 속에서도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마음에서 피어난다. 기도는 원하는 것을 이루어 내기 위한 주문이 아니라, 흔들리는 마음을 창조주 앞에 다시 세우는 일이다. 감사는 그 기도 속에서 “내가 아직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고백과 함께 자란다.
하박국은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고, 포도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다고 노래한다. 그것은 결핍을 아름답게 꾸미는 시가 아니다. 그는 이미 나라의 무너짐과 심판의 그림자를 보았고, 몸이 떨릴 만큼 두려워하였다. 그럼에도 그의 기쁨은 환경의 풍요에서 솟지 않았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에서 흘러나왔다. 잃어버린 것들은 분명히 있었으나, 하나님 자신까지 잃은 것은 아니었다.
은혜를 알아보는 눈
감사의 반대는 단순한 불평만이 아니다.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받은 것을 자기 능력의 결과로만 해석하는 망각이다. 사람은 익숙해진 은혜를 쉽게 보지 못한다. 매일 떠오르는 빛, 무심히 쉬는 숨, 곁에 있는 사람의 수고, 실패 뒤에도 다시 주어지는 시간은 너무 흔하여 감탄을 잃는다. 감사는 새 것을 더 많이 얻는 능력보다, 이미 주어진 것을 은혜로 알아보는 눈에 가깝다.
그러나 그 눈은 현실에서 도망치는 눈이 아니다. 감사하는 사람도 울고, 잃은 것을 애도하며, 불의한 일을 불의하다고 말한다. 다만 슬픔의 한복판에서도 하나님께 등을 돌리지 않는다. 감사는 현실을 부정하는 힘이 아니라, 현실보다 더 깊이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을 신뢰하는 힘이다. 그리스도께서 떡을 떼시기 전 감사하셨고, 십자가의 밤에도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맡기셨다는 사실은 감사가 편안한 날의 장식이 아님을 보여 준다.
저녁이 깊어질수록 방 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늘어난다. 낮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늘과 빈자리도 어둠 속에서 선명해진다. 그러나 어둠은 빛이 사라졌다는 증거가 아니라, 빛을 기다리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감사는 모든 상실을 지워 버리는 말이 아니다. 남아 있는 은혜의 이름을 천천히 부르며, 아직 보이지 않는 아침을 하나님께 맡기는 마음의 작은 등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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