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가시는 하나님,
길이 없다고 여겨질 때, 앞에 계시는 하나님
성경 본문: 출애굽기 13:17-22, 14:19-20
앞을 알 수 없다는 것은 단지 계획표 한 장이 비어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익숙하던 길이 끊긴 듯한 날, 사람은 자기 발밑의 땅마저 믿기 어려워진다. 오래 붙들어 온 일이 허물어지고, 기다리던 소식이 오지 않으며, 다음 계절을 상상할 힘도 사라질 때가 있다. 밤은 어두워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더 깊어진다. 지도에 없는 길 앞에서 인간은 대개 자기 안의 작은 불빛부터 살핀다. 그러나 그 불빛은 바람이 세면 흔들리고, 슬픔이 깊어지면 너무 쉽게 꺼진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난 뒤 마주한 길도 그러하였다. 하나님은 그들을 가장 가까워 보이는 블레셋 사람의 땅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전쟁을 만나 마음을 돌려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가까운 길이 언제나 구원의 길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백성을 광야 길, 곧 홍해 쪽으로 돌리셨다. 뒤에는 수백 년의 노예 생활을 상징하는 애굽이 있었고, 앞에는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광야가 있었다. 해방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자유의 길은 아직 환하게 열리지 않았다.
낮의 구름, 밤의 불
그때 여호와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 앞에서 가셨다. 출애굽기 13장은 하나님이 단 한 번 앞서가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 앞에서 가시며”라는 표현은 광야의 시간 내내 계속되는 하나님의 동행을 가리킨다. 구름기둥은 단순히 이동 방향을 알려 주는 표지판이 아니었다. 그것은 애굽의 우상들과 바로의 권세로부터 건져 내신 언약의 하나님이, 이제 자기 백성을 홀로 남겨 두지 않으신다는 임재의 표지였다.
낮의 구름은 광야의 눈부신 빛 속에서 길을 분별하게 하였고, 밤의 불은 어둠을 모두 없애기보다 걸어갈 만큼 밝혀 주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까지 한꺼번에 보이는 지도를 주지 않으셨다. 다음 걸음을 위한 빛을 주셨다. 인간은 전체 여정을 알고 싶어 하지만, 믿음은 종종 오늘의 한 걸음을 받아 드는 일에서 시작된다. 광야를 통과하는 백성에게 필요한 것은 먼 곳의 확실한 풍경보다, 지금 앞에 계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었다.
앞에서 가시고, 뒤에서 막으시는 분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는 언제나 우리가 기대하는 모양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은 물에 막히고 뒤에서는 바로의 병거 소리를 들었다. 앞서 가던 구름기둥은 그때 이스라엘 진 앞을 떠나 뒤로 옮겨, 애굽 군대와 백성 사이에 섰다. 하나님은 길을 여시는 분이시지만, 때로는 먼저 뒤를 막으시는 분이기도 하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열리기 전에, 과거의 공포와 옛 주인이 더 이상 백성을 삼키지 못하도록 사이에 서신다.
그러므로 막힌 바다는 하나님의 인도가 끝났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의 계산이 멈춘 그 자리에서, 누가 참으로 백성을 이끄시는지가 드러나는 자리였다. 이스라엘은 바다를 가를 능력이 없었고, 바로의 군대를 이길 힘도 없었다. 그들의 구원은 자신들의 용기나 판단에서 나오지 않았다. 언약을 기억하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광야의 기둥은 백성의 믿음이 만들어 낸 빛이 아니라, 믿음 없는 백성보다 먼저 움직이시는 은혜의 빛이었다.
예수께서도 목자가 양들보다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는 멀리서 안전한 길을 가리키는 안내자가 아니라, 죽음의 어둠과 심판의 깊이를 몸소 지나 백성의 길을 여신 목자이다. 그분의 앞서 가심은 고난을 피해 가게 한다는 약속이 아니라, 고난의 가장 어두운 자리에도 구원의 길이 끊기지 않았다는 복음이다.
앞을 모르는 날에는 길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과 아무도 앞서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같지 않다. 낮의 구름은 너무 평범하여 놓치기 쉽고, 밤의 불은 너무 작은 빛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럼에도 광야의 백성은 그 빛이 멈추면 머물고, 움직이면 걸었다. 모든 지평을 밝히지는 못해도, 한 걸음이 놓일 자리만은 밝히는 불빛이 있다. 어둠이 길의 마지막 말인 듯한 밤에도, 하나님은 이미 그 밤의 저편에서 자기 백성을 향해 걸어오고 계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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