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성령충만을 받으라

 

다른 취함으로 살아가는 밤

성경 본문: 에베소서 5:15-21, 갈라디아서 5:16-25

하루가 길게 저물면 마음은 자주 비어 있는 곳을 찾는다. 불안을 잠시 잊게 하는 말, 오래 누적된 피로를 덮어 줄 자극, 내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작은 도피처를 찾는다. 무엇인가에 기대어 자신을 잊고 싶은 밤이 있다. 사람은 꼭 술잔 앞에서만 취하는 것이 아니다. 칭찬에 취하고, 분노에 취하고, 욕망이 약속하는 빠른 만족에 취한다. 손에 쥔 것을 더 움켜쥐면 불안이 사라질 듯하고, 마음속 원하는 것을 얻으면 삶 전체가 충만해질 듯 여긴다. 그러나 그러한 취함이 지나간 자리에는 대개 더 깊어진 공허와, 자신도 낯설어진 영혼만 남는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쓴다. 이 말은 단지 절제의 규칙을 세우는 문장이 아니다. 술에 취한 사람의 말과 걸음과 판단이 술의 지배를 받듯, 인간은 무엇에 마음을 내어 주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을 내어 준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문장이다. 에베소는 번영한 항구 도시였고, 여러 신전과 종교적 열광, 상업의 욕망이 얽혀 있던 곳이었다. 바울은 그 도시의 성도들에게 무엇이 삶의 중심을 움직이고 있는지 묻는다. 그 질문은 오랜 세월을 지나 지금의 밤에도 여전히 들려온다.

비어 있는 마음과 채우시는 분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은 사람이 자기 안에 특별한 열정을 만들어 내라는 뜻이 아니다. 본문에서 “충만함을 받으라”는 표현은 계속해서, 그리고 외부로부터 채움을 받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성령 충만은 인간의 감정이 고조된 상태나 일시적인 종교적 흥분과 같지 않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을 자기 백성의 삶 안에 실제로 적용하시는 성령께서, 생각과 말과 관계와 선택을 새롭게 다스리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비어 있는 사람의 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힘으로 채울 수 없음을 아는 데서 시작된다. 하나님은 사람이 스스로 완성해 낸 강한 내면에만 찾아오시는 분이 아니다. 광야에서 메마른 백성에게 물을 주셨고, 오순절에 두려움에 잠긴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으셨다. 성령은 인간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하여 쌓아 올리는 사다리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먼저 내려 보내신 선물이다.

바울은 성령으로 충만한 삶의 표지를 화려한 체험보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 감사와 서로 복종하는 관계에서 찾는다. 성령의 충만은 사람을 자기 감정 속에 가두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찬송과 이웃을 향한 겸손으로 이끈다. 자기 욕망을 크게 만드는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삶의 중심을 차지하게 하는 힘이다. 한 사람의 말이 이전보다 조금 더 진실해지고, 화가 날 때에도 상대를 파괴하는 말에서 물러서며, 가진 것을 자기 만족의 도구로만 쓰지 않게 되는 변화가 그 충만의 조용한 열매이다.

육체의 길, 성령의 걸음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말하며 육체의 욕심을 따르는 삶과 대비한다. 여기서 육체는 몸 자체를 악으로 여기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몸은 경멸의 대상이 아니다. 바울이 말하는 육체는 하나님 없이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고 살아가려는 타락한 인간의 성향이다. 그것은 방탕과 탐욕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서로를 시기하고, 분열을 만들며, 자기 의로움을 앞세우고, 타인을 통제하려는 마음에도 숨어 있다.

성령을 따라 걷는 삶은 욕망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삶이 아니다. 마음 안에는 여전히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당기는 힘이 있다. 그러나 성령은 인간을 욕망의 포로로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바울이 말한 성령의 열매는 노력으로 매달아 두는 장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나무에 계절이 오면 맺히는 열매와 같다. 사랑과 희락, 화평과 오래 참음은 자신을 증명하려는 조급함이 잦아들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삶의 뿌리까지 스며들 때 조금씩 자라난다.

성령 충만은 세상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는 일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다른 지배를 받으며 사는 일이다. 욕망은 언제나 더 크게 붙들라고 속삭이지만, 성령은 그 손을 펴게 한다. 불안은 모든 것을 미리 확보하라고 재촉하지만, 성령은 오늘 주어진 은혜 안에서 걷게 한다. 저무는 날의 마음이 다시 무언가에 취하고 싶어질 때, 사람을 잊게 만드는 취함 대신 사람을 참된 자신으로 돌려놓는 바람이 있다. 그 바람은 소란스럽지 않아도, 밤을 건너는 영혼의 방향을 바꾸기에 충분한 하나님의 숨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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