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나무 해설, 살구나무(Almond Tree) 상징과 교훈
살구나무(Almond Tree)
살구나무의 기본 의미
살구나무(Almond Tree)는 성경에서 깨어 있음, 빠른 성취,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이루심, 제사장적 권위, 부활과 생명, 노년의 흰 머리, 성막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중요한 나무이다. 한국어 성경에서는 “살구나무”라고 번역되지만, 현대 식물학적으로는 우리가 흔히 먹는 살구(apricot)보다 아몬드나무(almond tree)에 가깝다. 영어 성경도 대부분 Almond Tree라고 번역한다.
성경의 살구나무는 특히 이른 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겨울이 아직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때에도 먼저 깨어 꽃을 피우기 때문에,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살구나무는 “깨어 있음”과 “빠른 시작”의 상징이 되었다. 이 이미지가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의 말씀 성취와 연결된다(렘 1:11-12).
살구나무는 또한 민수기 17장에서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고 꽃이 피며 살구 열매가 열린 사건과 연결된다(민 17:8). 마른 지팡이에서 생명이 돋아난 이 사건은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적 권위와 생명의 표징을 보여준다. 따라서 살구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깨어 성취되고, 하나님이 택하신 생명은 죽은 것 같은 자리에서도 열매 맺는다는 신학적 메시지를 품고 있다.
언어적 의미
구약에서 살구나무를 뜻하는 히브리어는 샤케드(שָׁקֵד, shaqed)이다. 이 단어는 “살구나무” 또는 “아몬드나무”를 뜻한다. 그런데 이 단어는 “깨어 있다”, “지켜보다”, “부지런히 살피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동사 샤카드(שָׁקַד, shaqad)와 소리가 매우 비슷하다.
예레미야 1장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물으시고, 예레미야는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라고 대답한다(렘 1:11). 이어 하나님은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고 말씀하신다(렘 1:12). 여기에는 샤케드(שָׁקֵד, shaqed)와 샤카드(שָׁקַד, shaqad)의 언어유희가 있다. 곧 “살구나무”는 하나님이 자기 말씀을 “깨어 지켜 이루시는” 분임을 보여주는 표지이다.
영어로는 Almond Tree라고 한다. Almond는 아몬드 열매를 뜻하고, Almond Tree는 아몬드나무를 뜻한다. 한국어 “살구나무”라는 번역은 전통적 성경 번역에서 온 것이지만, 본래 식물은 아몬드나무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신약에서 살구나무가 독립적인 신학적 상징으로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살구나무가 가진 “깨어 있음”, “첫 열매”, “죽은 것 같은 곳에서 돋는 생명”, “하나님의 말씀 성취”라는 주제는 신약의 그리스도론과 종말론 속에서 깊이 이어진다.
구약에서의 의미
야곱과 살구나무 가지
살구나무는 창세기 30장에서 야곱의 양 떼 번식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 야곱은 라반의 양 떼 가운데 얼룩지고 점 있고 아롱진 새끼들이 나오게 하려고 포플러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낸다(창 30:37).
이 장면에서 살구나무는 야곱의 인간적 지략과 하나님의 섭리가 함께 얽힌 이야기 속에 놓인다. 야곱은 라반에게 여러 번 속고 품삯이 바뀌는 억울함 속에서 자기 몫을 얻기 위해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창세기 31장에서 야곱은 자신의 번성이 단지 가지의 효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라반의 행위를 보시고 자신을 돌보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창 31:10-12).
따라서 창세기의 살구나무 가지는 인간의 계산과 하나님의 섭리 사이의 긴장을 보여준다. 사람은 방법을 사용하지만,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야곱의 삶은 늘 인간적 꾀와 하나님의 언약 은혜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하나님은 그 불완전한 인간을 통해서도 자기 약속을 이루신다.
성막 등잔대와 살구꽃 형상
살구나무의 이미지는 성막의 등잔대, 곧 금등잔대와도 연결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순금으로 등잔대를 만들게 하시면서 그 가지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살구꽃 형상으로 만들라고 명령하신다(출 25:31-34). 출애굽기 37장에도 브살렐이 등잔대를 만들 때 살구꽃 형상의 잔과 꽃받침과 꽃을 만들었다고 기록된다(출 37:19-20).
성막의 등잔대는 성소 안을 밝히는 기구이다. 그 등잔대에 살구꽃 형상이 새겨졌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살구나무는 이른 봄 가장 먼저 깨어 꽃피는 나무이고, 등잔대는 성소 안에서 빛을 밝히는 기구이다. 깨어 있음과 빛, 생명과 예배가 함께 연결된다.
금등잔대는 단순한 조명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꺼지지 않는 빛을 상징한다. 살구꽃 형상은 그 빛이 죽은 물질적 장식이 아니라 생명을 품은 빛임을 암시한다. 성소 안의 빛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안에서 깨어 있는 생명의 표지이다.
아론의 지팡이와 살구 열매
살구나무가 가장 강력한 신학적 의미로 등장하는 본문은 민수기 17장이다. 고라의 반역 이후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는 제사장적 권위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하나님은 각 지파의 지팡이를 하나씩 가져오게 하시고, 레위 지파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쓰게 하신다(민 17:1-3). 그 지팡이들을 증거궤 앞에 두었을 때,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의 지팡이에 싹이 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민 17:5).
다음 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보니,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 살구 열매가 열렸다(민 17:8). 마른 지팡이에서 싹과 꽃과 열매가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이 사건은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적 권위의 표징이다. 아론의 권위는 인간의 주장이나 정치적 힘에서 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죽은 지팡이에 생명을 내심으로 그를 세우셨다. 살구 열매는 하나님이 택하신 자에게 생명을 주시고 열매 맺게 하신다는 표지이다.
이 사건은 부활적 이미지도 지닌다. 지팡이는 본래 나무에서 잘려 나온 죽은 가지이다. 그런데 그 죽은 지팡이에 생명이 돋는다. 이는 하나님이 죽음 같은 자리에서도 생명을 일으키시는 분임을 보여준다. 구약의 제사장직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며, 아론의 지팡이는 하나님이 세우신 참 제사장 사역을 예표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예레미야의 살구나무 환상
예레미야서 1장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시며 두 가지 환상을 보여주신다. 첫 번째 환상이 살구나무 가지이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물으시자, 예레미야는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라고 대답한다(렘 1:11). 하나님은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고 하신다(렘 1:12).
이 본문은 살구나무의 언어적 의미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살구나무 샤케드(שָׁקֵד, shaqed)는 지켜보다 샤카드(שָׁקַד, shaqad)와 연결된다. 살구나무가 이른 봄에 가장 먼저 깨어 꽃피듯, 하나님은 자기 말씀을 깨어 지켜 이루신다.
예레미야의 사명은 쉽지 않았다. 그는 유다의 죄와 예루살렘의 심판을 선포해야 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더디다고 생각하거나 무시했을 수 있다. 그러나 살구나무 환상은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선포한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자기 말씀을 지켜보시는 분이다.
전도서의 살구나무
전도서 12장에는 노년과 죽음을 시적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중 “살구나무가 꽃이 피고”라는 표현이 있다(전 12:5). 많은 해석자들은 이것을 노인의 흰 머리를 비유하는 표현으로 이해한다. 살구꽃은 희거나 연한 빛을 띠기 때문에, 노년에 희어진 머리를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본문에서 살구나무는 인생의 늙음과 덧없음을 보여준다. 젊음은 지나가고, 몸은 약해지고, 사람은 영원한 집으로 돌아간다(전 12:5). 살구나무의 흰 꽃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인생의 저녁을 떠올리게 한다.
전도서는 이 묵상을 통해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권면한다(전 12:1). 살구나무는 여기서 생명의 빠른 시작뿐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 계절도 상징한다. 빨리 피는 꽃은 아름답지만, 인생의 시간도 빠르게 지나간다.
신약에서의 의미
직접적 언급은 거의 없음
신약에서 살구나무(Almond Tree)는 직접적으로 중요한 단어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약에서 살구나무가 가진 신학적 의미는 신약의 여러 주제 안에서 성취되고 확장된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 성취, 제사장적 권위, 부활 생명, 깨어 있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깊이 완성된다.
신약은 특정 나무의 상징보다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성막, 제사장직, 예언, 생명과 빛을 어떻게 성취하시는지를 더 강조한다. 따라서 살구나무는 직접 언급되지 않더라도 그 의미는 구속사 안에서 계속 살아 있다.
하나님의 말씀 성취와 그리스도
예레미야의 살구나무 환상은 하나님이 자기 말씀을 지켜 이루신다는 메시지였다(렘 1:12). 신약은 그 하나님의 말씀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이른다고 증언한다.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를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러 오셨다(마 5:17).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고후 1:20).
살구나무가 하나님의 말씀 성취를 상징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 말씀 성취의 중심이다. 하나님은 오래전 선지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을 마지막 날 아들 안에서 말씀하셨다(히 1:1-2). 살구나무 가지가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깨어 이루신다”고 말한 표지라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실제로 이루신 말씀”이다.
아론의 지팡이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
아론의 지팡이에 살구 열매가 열린 사건은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 권위를 증언한다(민 17:8). 신약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한 대제사장으로 선포한다(히 4:14; 히 7:24-27). 아론의 제사장직은 중요했지만 제한적이고 반복적이었다.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영원하고 완전하다.
마른 지팡이에 생명이 돋은 사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더 깊은 의미를 얻는다. 예수님은 죽임당하셨지만 부활하셨고, 죽음을 이기신 생명으로 자기 백성을 하나님께 인도하신다. 아론의 지팡이는 하나님이 생명을 통해 참된 권위를 증명하신 사건이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이 아들을 참 주와 그리스도로 드러내신 결정적 사건이다(롬 1:4).
깨어 있음의 신앙
살구나무는 이른 봄에 먼저 깨어 꽃피는 나무이다. 신약에서 깨어 있음은 중요한 제자도의 태도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고(막 13:37), 바울도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고 권면한다(살전 5:6).
살구나무는 성도에게 영적 잠에서 깨어 있어야 함을 묵상하게 한다. 하나님은 자기 말씀을 깨어 지키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성도도 하나님의 때와 말씀에 깨어 반응해야 한다. 세상이 잠들어 있어도 믿음의 사람은 먼저 깨어 꽃피는 살구나무처럼 하나님의 계절을 알아보아야 한다.
성경신학적 의미
창조와 첫 꽃의 신비
살구나무는 창조 세계 안에서 계절의 전환을 알리는 나무이다. 겨울이 아직 남아 있을 때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가진 섬세함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모든 나무를 같은 때에 피게 하지 않으셨다. 어떤 나무는 먼저 깨어 봄을 알린다.
성경적 창조론에서 살구나무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단순히 반복되는 자연 질서가 아니라, 때와 신호와 의미를 가진 세계임을 보여준다. 살구나무의 이른 꽃은 하나님이 계절을 다스리시는 분임을 말한다.
타락한 세계 속 말씀의 성취
예레미야 시대는 유다의 죄와 심판이 깊어진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하나님은 살구나무 가지를 보여주시며 자기 말씀을 지켜 이루겠다고 하셨다(렘 1:11-12). 이는 타락한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람의 말은 사라지고, 제국의 힘도 변하고, 성전과 도시도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 살구나무는 타락한 세계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 성취가 깨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지이다.
출애굽과 제사장직
아론의 살구 열매 난 지팡이는 출애굽 공동체 안에서 제사장직의 질서를 확증한다(민 17:8). 출애굽한 백성은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는 무질서한 자율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예배와 제사장직과 거룩한 질서를 세우셨다.
살구나무는 여기서 공동체의 질서와 하나님의 선택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는 생명을 낳는다. 반대로 인간의 반역적 권위는 분열과 죽음을 낳는다. 아론의 지팡이에 열린 살구 열매는 하나님이 생명으로 권위를 증명하신 사건이다.
성막과 빛
성막의 금등잔대에 살구꽃 형상이 있었다는 것은 성막의 빛과 생명 이미지를 연결한다(출 25:33-34). 성소 안의 등잔대는 어둠을 밝히는 빛이고, 살구꽃은 깨어나는 생명의 표지이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는 빛과 생명이 함께 있다.
이 이미지는 신약에서 그리스도와 연결된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시며(요 8:12), 그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요 1:4). 살구꽃 형상의 등잔대는 빛과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것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스도와 부활 생명
마른 지팡이에서 살구 열매가 열린 사건은 부활적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 죽은 나무 같은 지팡이에 생명이 돋았다. 이것은 하나님이 죽음의 자리에서도 생명을 일으키시는 분임을 보여준다.
구속사적으로 이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절정에 이른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리셨다. 아론의 지팡이가 제사장적 권위를 생명으로 증명했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아들 되심과 구속 사역의 완성을 증명한다.
교회와 깨어 있음
교회는 살구나무처럼 깨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자기 말씀을 깨어 지키시는 분이라면, 교회는 그 말씀을 듣고 시대를 분별해야 한다. 예레미야 시대의 문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긴 데 있었다. 오늘 교회도 말씀을 듣지만 실제로는 잠들어 있을 수 있다.
살구나무는 교회가 먼저 깨어야 함을 가르친다. 세상이 어둡고 차가워도, 하나님의 백성은 말씀 앞에서 깨어 꽃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창조론적 의미
살구나무는 창조 세계의 시간성과 질서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계절을 만드시고, 각 나무가 자기 때에 꽃피고 열매 맺게 하셨다. 살구나무가 이른 봄에 먼저 꽃피는 것은 창조 세계 안에 하나님이 심어 두신 신호와 리듬을 보여준다.
또한 살구나무의 아름다운 꽃과 열매는 창조의 선함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세상을 기능적으로만 만들지 않으셨다. 꽃과 열매, 향기와 색채, 계절의 기다림과 깨어남을 통해 창조의 아름다움을 나타내셨다.
계시론적 의미
예레미야의 살구나무 환상은 계시론적으로 중요하다. 하나님은 자연의 한 장면을 통해 말씀의 의미를 드러내셨다. 살구나무 가지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성취를 설명하는 계시의 도구가 되었다(렘 1:11-12).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추상적 언어로만 전달하지 않으시고, 피조 세계의 사물과 이미지, 환상과 상징을 통해서도 가르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경의 계시는 말씀이면서 동시에 상징과 이미지의 세계이기도 하다.
구원론적 의미
아론의 지팡이에 살구 열매가 열린 사건은 구원의 질서와 연결된다.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인간이 임의로 정할 수 없다. 하나님은 제사장직을 세우시고, 그 질서를 통해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셨다.
신약에서 이 제사장적 길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우리는 인간 제사장의 반복 제사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의 제사와 영원한 대제사장직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간다(히 10:19-22). 살구 열매 난 지팡이는 하나님이 정하신 중보의 길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스도론적 의미
살구나무의 의미는 그리스도 안에서 깊어진다. 예레미야의 살구나무가 말씀 성취를 상징했다면, 예수님은 성취된 말씀이다. 아론의 지팡이가 제사장적 권위를 증명했다면,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이다. 성막 등잔대의 살구꽃이 빛과 생명을 암시했다면, 예수님은 세상의 빛과 생명이다.
따라서 살구나무는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그 상징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더 완전한 의미를 얻는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깨어 있는 말씀 성취이며, 죽음 가운데서 피어난 부활 생명이다.
성령론적 의미
살구나무는 성령 안에서 깨어 있는 신앙을 묵상하게 한다. 성령은 성도를 영적 잠에서 깨우시고, 말씀을 깨닫게 하시며, 그리스도의 생명을 맺게 하신다. 살구나무가 이른 봄에 꽃피듯, 성령은 죽은 마음에 새 생명의 시작을 알리신다.
또한 성령은 교회가 시대를 분별하고 깨어 기도하게 하신다. 깨어 있음은 인간의 긴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과 은혜로 가능하다.
교회론적 의미
교회는 살구나무처럼 말씀 앞에서 깨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 말씀을 지켜 이루시는 분이므로, 교회는 그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설교와 예배와 성경 읽기는 단순한 종교 활동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 말씀 앞에 서는 사건이다.
또한 교회는 아론의 지팡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존중해야 함을 배운다. 참된 영적 권위는 인간의 야망이나 다수의 힘에서 오지 않는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곳에 참된 권위가 있다.
종말론적 의미
살구나무는 종말론적으로 깨어 있음과 말씀 성취를 바라보게 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자기 말씀을 지켜 이루신다고 하셨다(렘 1:12). 이 원리는 마지막 날까지 이어진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심판과 구원, 새 하늘과 새 땅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성도는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기다림은 잠드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막 13:37). 살구나무는 겨울 끝에 먼저 피는 꽃처럼, 성도가 하나님 나라의 봄을 기다리며 깨어 살아야 함을 가르친다.
영적 교훈
살구나무는 성도에게 먼저 하나님은 자기 말씀을 지켜 이루시는 분임을 가르친다. 사람은 잊고 흔들리고 약속을 어기지만, 하나님은 깨어 계신다. 예레미야의 살구나무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표지이다.
살구나무는 또한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고 말한다. 살구나무가 가장 먼저 꽃피듯, 성도는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말씀 앞에 먼저 깨어야 한다. 신앙은 잠든 습관이 아니라 깨어 있는 응답이다.
살구나무는 마른 지팡이에서도 생명을 내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한다. 아론의 지팡이는 죽은 나무였지만, 하나님은 거기에서 싹과 꽃과 열매를 내셨다. 성도는 자기 삶이 마른 지팡이 같다고 느낄 때에도 하나님의 생명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
살구나무는 참된 권위가 생명과 열매로 증명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인간의 권위는 소리와 힘으로 자신을 주장하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는 생명을 낳고 열매를 맺는다.
살구나무는 인생의 시간을 기억하게 한다. 전도서의 살구꽃은 노년의 흰 머리를 떠올리게 한다(전 12:5). 인생은 빠르게 지나간다. 그러므로 성도는 청년의 날에 창조주를 기억하고, 노년에도 하나님 앞에서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살구나무는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바라보게 한다. 죽은 지팡이에 꽃과 열매가 열린 것처럼, 하나님은 죽음 가운데서 생명을 일으키신다. 그 생명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정리
살구나무(Almond Tree)는 성경에서 깨어 있음, 빠른 말씀 성취, 제사장적 권위, 생명과 부활, 성막의 빛과 아름다움, 인생의 노년을 상징하는 중요한 나무이다. 히브리어로는 살구나무(שָׁקֵד, shaqed)이며, 이는 “깨어 지켜보다”를 뜻하는 동사 샤카드(שָׁקַד, shaqad)와 연결된다. 영어로는 Almond Tree라고 하며, 한국어 “살구나무”보다는 식물학적으로 아몬드나무에 가깝다.
구약에서 살구나무는 야곱의 양 떼 이야기 속에 등장하고(창 30:37), 성막 금등잔대의 살구꽃 형상으로 나타나며(출 25:33-34), 아론의 지팡이에 싹과 꽃과 살구 열매가 열린 사건에서 제사장적 권위와 생명의 표징이 된다(민 17:8). 예레미야의 살구나무 환상은 하나님이 자기 말씀을 지켜 이루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렘 1:11-12). 전도서에서는 살구꽃이 인생의 노년과 덧없음을 묵상하게 한다(전 12:5).
신약에서 살구나무가 직접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그 의미는 그리스도 안에서 깊이 성취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말씀을 이루셨고, 그리스도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신 생명의 주이시다. 성막 등잔대의 빛과 생명 이미지는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한다.
결국 살구나무는 성도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졸지 않으신다. 그분은 자기 말씀을 깨어 지키시고 반드시 이루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겨울 끝에 먼저 피는 살구꽃처럼 말씀 앞에 깨어 있어야 한다. 마른 지팡이 같은 인생도 하나님 손에 들리면 꽃피고 열매 맺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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