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용어 사전, 거룩(Holiness)
거룩(Holiness)
거룩의 기본 의미
성경에서 “거룩”은 하나님을 설명하는 가장 중심적인 단어 가운데 하나이다. 사랑, 의, 은혜, 전능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존재 방식 자체를 가장 강렬하게 드러내는 말은 “거룩”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단순히 “크신 분”이나 “능력 있는 분”으로만 말하지 않고, “거룩하신 분”으로 선포한다.
히브리어로 거룩은 코데쉬(קֹדֶשׁ, qodesh), 형용사 “거룩한”은 카도쉬(קָדוֹשׁ, qadosh)이다. 기본 의미는 “구별됨”, “분리됨”, “따로 세워짐”이다. 헬라어 신약에서는 하기오스(ἅγιος, hagios)가 사용되며, 역시 “거룩한”, “하나님께 속한”, “구별된”이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나 성경의 거룩은 단순히 “깨끗함”이나 “도덕적으로 착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 먼저 거룩은 “하나님께 속함”이다. 어떤 사람, 장소, 시간, 물건이 거룩하다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 구별되어 바쳐졌다는 뜻이다. 따라서 거룩은 윤리 이전에 소속의 문제이고, 행위 이전에 관계의 문제이다.
언어적 의미
히브리어 코데쉬(קֹדֶשׁ)
구약에서 거룩을 뜻하는 코데쉬(קֹדֶשׁ)는 “일상적인 것과 구별된 상태”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하나님께 속한 성전, 제사장, 제물, 안식일, 절기, 백성도 거룩하다고 불린다.
예를 들어 안식일은 “거룩한 날”이다(출 20:8). 성막은 “거룩한 곳”이다(출 26:33). 제사장은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이다(출 28:41).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한 백성”이다(신 7:6). 여기서 공통점은 모두 하나님께 속하도록 구별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은 단지 내면의 경건한 감정이 아니다. 시간도 거룩할 수 있고, 공간도 거룩할 수 있으며, 물건도 거룩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룩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구별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헬라어 하기오스(ἅγιος)
신약의 하기오스(ἅγιος)는 구약의 거룩 개념을 이어받는다. 신약에서 성도는 하기오이(ἅγιοι, hagioi), 곧 “거룩한 자들”이라고 불린다(롬 1:7; 고전 1:2). 여기서 성도는 도덕적으로 완성된 사람들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속한 자로 구별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성도는 거룩해져서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기 때문에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신약의 거룩은 신분과 삶을 함께 포함한다.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시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의 거룩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거룩하시다
성경에서 거룩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본질이다. 하나님은 어떤 외부 기준에 의해 거룩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 거룩의 근원이다. 하나님은 피조세계와 구별되며, 죄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 영광과 순결과 위엄 가운데 계신 분이다.
이사야는 성전 환상에서 스랍들이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3)
히브리어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강조이다. “거룩하다”를 세 번 반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이 절대적이고 충만하다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조금 거룩하신 분이 아니라, 완전하고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분이다.
거룩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임재를 함께 말한다
하나님의 거룩은 하나님이 피조물과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인간처럼 제한되지 않으시며, 죄에 물들지 않으시고, 창조 세계 안에 갇히지 않으신다. 이것을 하나님의 초월성이라 한다.
그러나 성경의 거룩은 하나님이 멀리 계시기만 한다는 뜻이 아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 가운데 임재하신다. 성막과 성전의 핵심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 많은 백성 가운데 거하신다는 신비이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출 29:45)
거룩은 거리감만이 아니라 은혜로운 가까움도 포함한다. 하나님은 너무 거룩하시기에 죄와 함께하실 수 없지만, 동시에 은혜로 자기 백성을 정결하게 하시고 그들 가운데 거하신다.
이스라엘과 거룩
거룩한 백성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신 7:6)
여기서 성민은 “거룩한 백성”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이 거룩한 이유는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시고 자기 소유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출애굽 이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6)
이스라엘의 거룩은 선교적 의미를 가진다. 그들은 세상과 단절된 민족이 되기 위해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열방 가운데 드러내기 위해 구별되었다. 거룩은 폐쇄성이 아니라 증언이다.
레위기의 거룩
레위기는 거룩을 가장 깊게 다루는 책이다. 레위기의 중심 명령은 이것이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
이 말씀은 성경적 거룩의 핵심이다. 거룩의 기준은 인간의 도덕 감각이나 사회 관습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
레위기의 거룩은 제사와 정결법에만 머물지 않는다. 레위기 19장은 부모 공경, 안식일, 우상 금지, 가난한 자를 위한 이삭 남기기, 도둑질 금지, 품꾼의 삯 지급, 재판의 공의, 이웃 사랑 등을 다룬다(레 19:3-18). 곧 거룩은 예배당 안의 경건만이 아니라 일상, 경제, 노동, 성, 재판, 이웃 관계 전체를 포함한다.
거룩과 정결
거룩과 정결은 같지만 다르다
성경에서 거룩과 정결은 밀접하지만 완전히 같은 말은 아니다. 정결은 히브리어 타호르(טָהוֹר, tahor)로, 제의적으로 깨끗한 상태를 뜻한다. 부정은 타메(טָמֵא, tame)로, 제의적으로 더럽혀진 상태를 뜻한다.
정결은 거룩에 접근하기 위한 조건과 관련된다. 부정한 상태에서는 거룩한 영역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일에는 정결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결 자체가 곧 거룩의 전부는 아니다. 어떤 것이 정결하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께 바쳐진 것은 아니다. 거룩은 하나님께 속한 구별이고, 정결은 그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깨끗함의 상태이다.
죄와 부정의 문제
구약의 정결법은 현대인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깊은 의미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인간의 상태를 가르치는 데 있다. 죄는 인간을 더럽히고, 죽음은 부정함을 가져오며, 피와 생명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엄중하게 다루어진다.
성경은 인간이 아무렇게나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정결하게 되어야 한다. 이 원리는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성취된다. 우리는 예식적 정결 규례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피로 마음이 정결하게 되어 하나님께 나아간다(히 10:19-22).
성막과 성전의 거룩
거룩한 공간
성막과 성전은 거룩의 구조를 공간적으로 보여준다. 성막에는 뜰, 성소, 지성소가 있었다. 지성소는 가장 거룩한 곳이며, 언약궤가 있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적 자리였다(출 26:33-34).
이 구조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일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보여준다. 아무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 피를 가지고 들어갔다(레 16:2-34). 거룩하신 하나님께 죄인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속죄가 필요했다.
거룩과 피
성막 제사에서 피는 매우 중요하다. 피는 생명을 상징하며, 속죄의 수단으로 주어졌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죄에는 죽음의 대가가 따른다. 구약의 제사는 죄의 심각성과 속죄의 필요성을 가르쳤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했다.
거룩과 윤리
거룩은 삶의 전체를 요구한다
성경적 거룩은 종교 의식에 갇히지 않는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삶 전체에서 하나님께 속한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베드로전서는 레위기의 말씀을 인용한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
“모든 행실”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거룩은 예배할 때만 필요한 태도가 아니다. 말, 돈, 성, 권력, 노동, 인간관계, 분노, 용서, 음식, 시간 사용까지 포함한다. 거룩은 삶의 일부분이 아니라 존재 전체의 방향이다.
거룩은 사랑과 분리되지 않는다
거룩을 오해하면 차갑고 배타적인 태도로 흐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의 거룩은 사랑과 분리되지 않는다. 레위기 19장의 “거룩하라”는 명령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이어진다(레 19:18).
즉 거룩은 사람을 멀리하는 냉정함이 아니다. 거룩은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대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참된 거룩은 사랑 없는 엄격함이 아니며, 참된 사랑은 거룩 없는 방종이 아니다.
선지자들이 말한 거룩
형식적 거룩에 대한 책망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성전과 제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삶이 불의할 때 강하게 책망했다. 이사야는 손에 피가 가득한 백성의 제사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한다(사 1:11-17). 아모스는 절기와 제사를 미워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고 외친다(암 5:21-24).
이것은 거룩이 형식으로 대체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거룩한 장소, 거룩한 절기, 거룩한 제사를 가지고 있어도 삶이 불의하면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 거룩은 예배와 윤리의 통합이다.
거룩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자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불린다(사 1:4; 사 5:19; 사 41:14). 이 표현은 하나님의 거룩과 언약적 관계를 함께 담고 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지만,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신다. 이사야 6장에서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고백한다(사 6:5). 그러나 하나님은 제단 숯불로 그의 입술을 정결하게 하신다(사 6:6-7). 거룩은 죄인을 무너뜨리지만, 은혜는 그 죄인을 정결하게 하여 사명자로 세운다.
예수 그리스도와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신약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불린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막 1:24)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완전히 드러내시는 분이다. 그는 죄가 없으시며(히 4:15), 하나님 아버지께 완전히 순종하셨다. 예수님의 거룩은 단순한 분리만이 아니라 죄인을 향해 가까이 오시는 거룩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하셨지만 죄에 물들지 않으셨다(막 2:15-17). 그는 부정한 자를 만지셨지만 자신이 부정해지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깨끗하게 하셨다(막 1:41-42). 구약의 정결 질서에서는 부정이 전염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님 안에서는 거룩이 부정을 이긴다.
십자가와 거룩
십자가는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이 만나는 자리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는 반드시 심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죄인을 구원하기 원하신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죄의 형벌을 담당하시고, 죄인을 거룩하게 하신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자기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고 말한다(히 13:12). 또한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드리신 제사로 믿는 자들을 거룩하게 하셨다고 증언한다(히 10:10).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거룩은 자기 수양의 결과만이 아니다. 그 뿌리는 십자가의 피에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속죄로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고, 그 은혜 안에서 거룩한 삶으로 부름받았다.
성령과 거룩
성령은 거룩하게 하시는 영
성령은 영어로 Holy Spirit, 곧 “거룩한 영”이다. 헬라어로는 프뉴마 하기온(πνεῦμα ἅγιον, Pneuma Hagion)이다. 성령의 사역 가운데 중요한 것은 성도를 거룩하게 하시는 일이다. 이를 성화(聖化, sanctification)라고 한다.
성화는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거룩한 자로 구별된 신분에 맞게 실제 삶에서도 점점 거룩하게 변화되는 과정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말한다(살전 4:3).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라 거룩하게 하심이라고 말한다(살전 4:7).
이미와 아직
그리스도인은 이미 거룩한 자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처럼 문제가 많은 교회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부른다(고전 1:2).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실제 삶에서 거룩해져야 했다.
이것이 신약 성화론의 긴장이다. 신자는 이미 거룩하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거룩하게 살지는 못한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 날마다 죄를 죽이고,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한다. 거룩은 신분이며 과정이고, 은혜이며 명령이다.
교회와 거룩
성도의 공동체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이다. 베드로는 교회를 향해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말한다(벧전 2:9). 이는 출애굽기 19장 6절의 언어가 교회에 적용된 것이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구별은 세상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공동체이다(요 17:14-18). 거룩은 도피가 아니라 파송된 구별이다.
교회의 거룩과 권징
교회가 거룩한 공동체라는 것은 죄를 가볍게 다룰 수 없다는 뜻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음행 문제를 책망하며 교회의 거룩을 지킬 것을 명령한다(고전 5:1-13). 교회의 권징은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공동체의 거룩과 죄인의 회복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거룩은 자기 의로움을 자랑하는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은혜로 거룩하게 된 죄인들의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거룩은 겸손과 회개와 사랑을 동반해야 한다.
구속사적 의미
창조에서 거룩
창조 세계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창 1:31). 아직 죄가 들어오기 전, 세계는 하나님의 질서와 선함 안에 있었다. 그러나 창조 기사에서 특별히 거룩하게 구별된 것은 일곱째 날이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창 2:3).
이는 거룩이 창조 질서 안에서 처음으로 시간의 구별로 나타난다는 점을 보여준다. 거룩은 인간의 종교적 발명품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 안에 새기신 질서이다.
타락 이후 거룩의 문제
죄가 들어온 후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다(창 3:8).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거리와 두려움을 만들었다.
이후 성경의 구속사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죄인 가운데 거하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따라 전개된다. 성막, 제사, 제사장, 정결법은 모두 이 질문에 대한 임시적이고 예표적인 답이다.
출애굽과 거룩한 백성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다(출 19:6). 출애굽은 단순한 정치적 해방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구별되는 사건이다. 구원은 소속의 변화이다. 바로의 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성전과 거룩한 임재
성막과 성전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인 가운데 거하시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방식은 제한적이었다. 지성소에는 휘장이 있었고, 대제사장만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이는 아직 완전한 접근이 열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거룩
예수 그리스도는 참 성전이시며(요 2:19-21), 참 제사장이시고(히 4:14), 참 제물이시다(히 10:10). 그분 안에서 거룩의 문제가 결정적으로 해결된다. 그리스도는 죄인을 깨끗하게 하시고, 하나님께 나아갈 새롭고 산 길을 여신다(히 10:19-20).
새 창조와 완성된 거룩
성경의 마지막은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으로 끝난다(계 21:1-2). 그곳에는 더 이상 부정한 것이 들어오지 못한다(계 21:27).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얼굴을 보며, 그분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에 있다(계 22:4).
이것이 거룩의 종말론적 완성이다. 거룩은 단지 개인 경건의 목표가 아니라 새 창조의 상태이다. 마지막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모든 더러움과 거리와 두려움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온전히 함께하신다.
거룩의 영적 교훈
거룩은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다
거룩은 먼저 “내가 누구에게 속했는가”의 문제이다. 성도는 자기 자신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사람이다(고전 6:19-20).
거룩은 분리이지만 고립은 아니다
성경적 거룩은 죄와 우상으로부터의 분리이다. 그러나 사람을 향한 사랑과 세상을 향한 사명을 버리는 고립은 아니다. 예수님은 죄인에게 가까이 가셨지만 죄에 속하지 않으셨다.
거룩은 예배와 일상의 통합이다
거룩은 주일 예배만이 아니라 월요일의 말, 돈, 몸, 관계, 노동, 생각까지 포함한다. 하나님은 거룩한 예배와 거룩한 삶을 나누지 않으신다.
거룩은 은혜에서 시작해 순종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거룩은 공로가 아니라 은혜의 열매이다.
정리
거룩(Holiness)은 성경에서 하나님께 속하도록 구별되는 것을 뜻한다. 히브리어 코데쉬(קֹדֶשׁ)와 카도쉬(קָדוֹשׁ), 헬라어 하기오스(ἅγιος)는 모두 구별됨, 하나님께 속함, 정결함, 헌신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거룩하신 분이다. 그분은 피조물과 구별되며 죄와 분리되어 계신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거룩하신 하나님은 은혜로 죄인 가운데 거하기를 원하신다. 구약의 성막과 성전, 제사와 정결법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죄인이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표였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은 성취된다. 그리스도는 자기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셨고(히 13:12), 성령은 성도 안에서 거룩한 삶을 이루어 가신다. 교회는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받았으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야 한다.
구속사적으로 거룩은 창조의 질서에서 시작되어, 출애굽의 거룩한 백성, 성막과 성전의 거룩한 임재,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의 성화,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완성된 거룩으로 이어진다. 결국 거룩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자기 것으로 삼으시고, 자기 임재 안에 온전히 살게 하시는 구원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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