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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신약로마서

로마서 16:19-20 강해, 악에 미련하고 선에 지혜로운 교회

by BibleMeditation 202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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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 미련하고 선에 지혜로운 교회

세상은 우리에게 영리할 것을 요구하고, 모든 정보에 밝고 민첩하게 반응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의 길을 제시합니다. 특히 바울은 로마서의 마지막 권면 가운데, 성도들에게 악에 대해서는 미련하되 선에 대해서는 지혜로운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끝자락에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으로 마무리합니다. 로마서 16장 19절과 20절은 복음 공동체가 어떤 기준 위에 서야 하며, 최종적으로 누가 교회의 승리를 이루시는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역시 복음 앞에 온전히 서야 할 부르심을 다시 새깁니다.

 

순종의 아름다움과 기쁨

바울은 1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바울은 로마 교회에 대한 칭찬으로 시작합니다.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이는 단지 외적인 행실의 정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는 순종은, 복음을 따르는 데서 오는 전적인 헌신,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복종을 의미합니다.

 

이 순종은 단순히 명령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와 삶의 방향까지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단지 올바른 신학을 아는 자가 아니라, 그 진리에 순종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의 그런 점에서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순종은 단지 바울에게만 감동을 준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들린’ 것이었습니다. 곧 믿음의 공동체 전체가 그 순종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교회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더욱 깊은 권면을 더합니다.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이 표현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세상은 악에 대해 민감하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심지어 타협할 수 있는 유연함을 지혜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그 반대를 말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지혜는 헬라어 ‘σοφία(소피아)’로,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것에 따라 사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선한 데 지혜롭다’는 것은 선을 향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하나님의 뜻을 빠르게 분별하며, 적극적으로 행하는 태도입니다. 반대로 ‘악한 데 미련하다’는 말은 악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그 유혹을 분석하거나 따라가지 않으며, 거리를 두고 반응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미련하다’는 표현은 헬라어로 ‘ἀκέραιος(아케라이오스)’인데, 이는 순수하고 해를 모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곧 성도는 악에 대해 순결하고, 그 영향에서 떨어진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 교회가 이미 순종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 믿음의 길을 계속해서 유지하며 더욱 선에 대한 지혜와 악에 대한 순결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격려합니다. 이 권면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교회는 이 시대 가운데서도 복음에 대한 전적인 순종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되, 악에 대해서는 거리두기와 절제가 분명해야 합니다.

 

승리의 약속: 하나님이 사탄을 상하게 하시리라

그리고 20절에서 바울은 교회의 미래를 향한 확신을 선포합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 말씀은 격려와 찬송을 넘어선 예언적 선언입니다. 교회가 진리 안에 서고, 선에 지혜롭고 악에 미련할 때 하나님은 그 교회를 통해 사탄을 상하게 하십니다.

 

여기서 ‘평강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평강은 단순한 무사안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화목, 인간 내면의 평안, 그리고 공동체의 질서가 모두 포함된 샬롬의 개념입니다. 바울은 바로 그 하나님이 교회를 위해 일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사탄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는 일입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3장 15절에 주어진 원복음, 곧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는 약속을 배경으로 합니다. 바울은 지금 그 구속사의 성취를 교회에 적용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거짓과 분열의 영이며,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상하게 하십니다. 그것도 ‘너희 발 아래에서’라는 표현은, 교회가 단지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승리에 실제로 동참하게 될 것이라는 영광스러운 약속입니다.

 

이 승리는 단지 미래의 종말적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교회가 진리 안에 설 때 누리게 되는 실재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탄의 권세를 이기며, 악을 거절하고, 진리를 선포함으로써 이미 그 발 아래에서 사탄을 밟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바울은 이 승리를 ‘속히’ 이루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체하지 않으시며, 교회가 악에 무너지지 않도록 신속하게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에게 임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합니다. 이 은혜는 단지 형식적인 마무리가 아닙니다. 사탄을 이기는 능력도, 악을 이기고 선을 행하는 삶도, 모두 이 은혜로부터 시작되고 유지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결코 지혜로울 수 없고, 악에서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모든 승리의 삶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근거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다시금 강조합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교회

이 말씀은 단지 종말론적인 기대를 넘어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교회에 주어진 실제적 승리를 선포하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종종 악을 분석하려고 하고, 거짓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대항하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단순하고 명확한 방법을 가르치십니다. 선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악에 대해서는 미련할 만큼 순결하게 살며, 모든 싸움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복음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사탄을 밟게 하시고, 그 승리를 우리 삶 속에 실제로 경험하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바울의 이 권면처럼, 순종함으로 복음을 따르며, 악에 대해서는 순결함을 지키고, 선한 일에 지혜로움으로 빛을 발할 때, 하나님의 승리가 우리 가운데 실제로 나타날 줄 믿습니다. 교회의 힘은 숫자나 외형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진정한 권세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복음에 순종하는 데 있고, 하나님은 그러한 교회를 통해 사탄을 짓밟고 승리를 선포하십니다.

 

결론

로마서 16장 19절과 20절은 교회가 세상과 싸워야 할 무기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악을 파헤치는 분석이 아니라, 악에 미련할 정도로 순결하고, 선에 민감할 정도로 지혜로운 삶. 그 길이 결코 쉽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 길 끝에 사탄을 짓밟는 승리를 예비하십니다. 그리고 그 승리는 우리 힘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리 안에서 순종하며, 악에 물들지 않고 선을 행하는 믿음의 삶을 힘 있게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의 삶과 교회를 통해 사탄을 무너뜨리시고, 그 발 아래 승리의 역사로 이끄실 것입니다.

로마서 16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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