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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신약로마서

로마서 11:25-32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

by BibleMeditation 2025.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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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신비한 경륜과 긍휼의 약속

로마서 11장 25절에서 32절은 바울이 이방인과 유대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신비'로 밝히며, 모든 인류를 향한 긍휼의 섭리를 드러내는 절정의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단순한 민족 구원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속사의 방향성과 결말, 그리고 모든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자비를 깊이 있게 선포합니다. 이방인에게는 교만하지 말라는 권면을, 이스라엘에게는 소망을, 그리고 온 인류에게는 하나님의 극률을 선언하는 복음의 정수가 이 안에 담겨 있습니다.

 

신비로 드러난 이스라엘의 회복

바울은 25절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라고 말하며, 이제까지 말해온 구원 역사에 대해 ‘신비’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신비’라는 말은 헬라어 μυστήριον (뮤스테리온)으로, 단순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 드러내시는 구속사의 숨겨진 계획을 의미합니다. 이 신비의 핵심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르고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구절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둔하게 되었다’는 말은 헬라어 πώρωσις (포로시스)로,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져 영적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 우둔함이 전 이스라엘에게 임한 것이 아니라, 일부에게 임했다고 말합니다. 즉, 완전한 배척이 아닌,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완악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상태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유효한 일시적 사건입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온다는 말은 단순히 숫자의 채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신 구원의 경륜이 이방인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시점을 의미합니다. 이방인 가운데 복음이 퍼지고 교회가 성장하는 그 과정을 하나님은 정하신 뜻 가운데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시점이 차게 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구절은 단순히 민족적 부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 대한 회복의 약속이며,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민족과 세대, 시기를 초월하여 신실하게 이루어지는 증거입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은 오해의 여지가 많은 구절이지만, 개혁주의 전통은 이를 전 민족이 일시에 다 구원받는다는 의미로 해석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에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될 유대인들의 회복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이 변하지 않으며, 그 백성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 선언입니다.

 

긍휼의 복음과 언약의 신실함

바울은 이어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아직도 유효함을 강조합니다.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28절)는 말씀은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복합적인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예수를 거부하고 박해한 자들이기에 원수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언약 때문에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 긴장감 있는 시각은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불신자나 적대적인 이들을 단순히 멀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기에는 거부하고 멀어진 자들을 향해 여전히 손을 내미시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29절의 말씀은 이 모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받치는 근거가 됩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는 이 구절은 구속사의 중심에서 가장 안정된 축을 제공합니다. 여기서 ‘후회하심이 없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성품의 불변성과 약속의 확고함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처럼 변덕스럽게 감정을 따라 약속을 바꾸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진리는 오늘날 복음을 의지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가 흔들려도, 하나님은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모두를 긍휼히 여기시려는 하나님의 경륜

마지막 30절부터 32절까지는 이 구원의 경륜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내기 위함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바울은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라고 말합니다. 이방인이 구원을 받은 배경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이었고, 역설적으로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구원을 통해 다시 긍휼을 입게 되는 구조로 설명됩니다.

 

여기서 반복되는 단어가 바로 ‘긍휼’입니다. 헬라어로는 ἔλεος (엘레오스)로, 이는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라, 죄인 된 자를 향해 하나님께서 그 죄값을 담당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뜻합니다. 이 긍휼이 이방인에게도, 유대인에게도 동일하게 임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이 얼마나 철저히 은혜에 기초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바울은 32절에서 결정적으로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구속사의 깊은 신학적 결론이자, 복음의 본질을 선포하는 핵심 구절입니다. ‘가두어 두다’는 말은 헬라어 συγκλείω (슝클레이오)인데, 이는 포로를 가두거나, 사방을 막아 놓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 곧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전 인류가 죄 가운데 갇혀 있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죄에 대한 심판을 끝으로 두지 않으시고, 그 모든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기 위한 구속사를 펼치십니다.

 

이 진리는 인간의 공로를 철저히 배제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만을 중심에 둡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이유는 우리가 더 낫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한 긍휼로 당신의 백성, 잃어버린 이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결론

로마서 11장 25절부터 32절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계획을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에게 확장하시며, 그 중심에 '긍휼'이라는 하나님의 성품이 있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의 완악함도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 안에서 사용되고, 결국에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소망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사는 후회함이 없으며, 이 은혜는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동시에 모두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그 누구도 자랑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높이며 살아가야 합니다.

로마서 11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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