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자다가 깰 때입니다
로마서 13장 11절부터 14절은 바울이 로마서에서 교리와 실천을 연결하는 결론적인 윤리 권면을 마무리하며, 성도의 삶에 대한 종말론적 긴박감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복음으로 구원받은 자의 삶은 단지 ‘착하게’ 사는 수준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하나님의 때’로 인식하고, 거룩함과 경건함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강력한 요청입니다. 바울은 이 짧은 네 절 속에서 성도들에게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라”, “잠에서 깨어나라”, “빛의 갑옷을 입으라”,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명확한 명령을 통해, 영적으로 깨어있는 삶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때를 아는 신자의 삶
바울은 11절에서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고 있으니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시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καιρός (카이로스)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을 뜻하는 크로노스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결정적 순간, 즉 구원의 역사 속 하나님의 시간표를 의미합니다. 성도는 세상의 시계가 아닌, 하나님의 카이로스를 읽으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는 말씀은 단순히 의식의 전환이 아니라, 영적 무감각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깨어있음을 요청하는 권면입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 삶에 익숙해지며, 믿음의 열정이 식고 경건이 느슨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바울은 지금이야말로 그런 영적 나태함에서 깨어나야 할 때라고 강하게 말합니다.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는 표현은 종말론적인 시간 인식입니다. 바울은 이미 믿음으로 구원받았지만, 그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질 날,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미 이루어진 구원(Justification)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원(Glorification)을 구분하며, 성도는 이 둘 사이에서 종말론적 긴장 속에 살아갑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이미 입었지만, 그 영광스러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기에 더욱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
바울은 12절에서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이 아닌, 두 시대—즉 어둠의 시대와 빛의 시대—의 교차점에 있는 성도의 정체성을 말합니다. ‘밤이 깊고’라는 말은 이 세상의 죄와 악, 타락의 현실이 절정에 다다랐다는 의미이며, ‘낮이 가까웠다’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이 다가왔다는 종말론적 선언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어둠의 일을 벗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벗다’는 말은 헬라어 ἀποτίθεσθε (아포티세스데)로, 낡은 옷을 완전히 벗어버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성도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옛사람에 속한 어둠의 삶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 대신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말하는데, 이는 단순히 수동적으로 착한 행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전투적이며 의도적인 영적 무장을 말합니다.
‘빛의 갑옷’은 에베소서 6장에서 말하는 전신갑주와도 연결되는 표현으로, 성도는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살아가야 하며, 이 어두운 세상 가운데 그 빛으로 싸우며 나아가야 함을 뜻합니다. 죄에 대한 타협과 게으름은 더 이상 성도의 삶에 머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답게, 어둠의 일—곧 음란, 탐욕, 분노, 거짓, 교만 등을 과감히 벗어야 합니다. 이는 회개와 거룩의 열매로 나타나는 구체적인 결단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도모하지 말라
13절과 14절은 바울이 구체적으로 어둠의 행위들을 열거하면서 경고하고, 그 대안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명령하는 대목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라는 말씀에서, 바울은 6가지 죄악을 언급합니다.
이 죄악들은 모두 인간의 육체적 정욕과 이기심, 통제되지 않은 감정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방탕’과 ‘술 취함’은 쾌락주의적 삶을, ‘음란’과 ‘호색’은 도덕적 타락을, ‘다툼’과 ‘시기’는 공동체 안에서의 분열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죄악은 로마 제국 당시의 풍조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도를 넘어뜨리는 강력한 유혹들입니다.
이 모든 유혹에 대한 바울의 해결책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13:14)는 명령입니다. 이 표현은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서도 등장하며,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 곧 정체성의 전환을 상징합니다. 옷은 정체성과 태도를 드러내는 상징입니다. 성도는 더 이상 죄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입은 자이며, 그 의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씀은 단지 충동을 억제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도모하다’는 헬라어 προνοεῖσθε (프로노에이스데)는 ‘계획하다, 준비하다’는 뜻입니다. 즉, 육신의 정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생각하고 계획하는 모든 태도를 버리라는 강력한 명령입니다. 죄는 우연히 범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기획과 욕망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모든 내면의 유혹조차도 단호히 차단하라고 명령합니다.
성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은 존재입니다. 이는 단지 이름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육신을 위한 계획을 세우지 말고, 성령을 따라 사는 영적 질서 아래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회심의 열매이며, 복음이 만든 변화입니다.
결론
로마서 13장 11절부터 14절은 복음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에 대한 종말론적 권면의 절정입니다. 우리는 지금 ‘때’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구원의 완성이 가까이 왔고, 밤은 깊었으며, 낮은 가까이 왔습니다. 이 시대는 더 이상 잠잘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어둠의 행위를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살아야 합니다. 성도의 삶은 영적 전쟁입니다. 세상의 타락과 유혹 속에서도 거룩과 절제로 싸워야 하며, 무엇보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정체성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깨어날 때입니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오늘 이 말씀 앞에서 결단하며 다시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로마서 13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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