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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마태복음 2장 강해: 경배받는 왕, 피난하는 왕

by BibleMeditation 2025.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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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장 강해: 경배받는 왕, 피난하는 왕

서론: 아기 예수를 향한 두 시선

마태복음 2장은 역설로 가득한 장입니다. 참된 왕이신 예수님은 예루살렘 왕궁이 아닌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탄생합니다. 그리고 동방에서 온 이방인들은 그분을 경배하러 오지만, 유대의 왕인 헤롯은 오히려 그를 죽이려 합니다. 하나님은 이 혼란과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보호하시고, 구속사의 큰 그림을 전개해 가십니다.


동방 박사들의 경배 (2:1–12)

메시아를 찾아 온 자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동방 박사들은 아람 지역이나 페르시아에서 온 점성술사 또는 학자들로 추정됩니다. 이방인들이 메시아의 탄생을 알아보고 먼 길을 떠났다는 사실은, 복음이 유대인뿐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열려 있다는 상징입니다.

별을 따라 온 신앙의 여정

박사들은 별을 보고, 그 별을 따라 왔습니다. 하늘의 별은 하나님의 계시를 상징하며, 그들의 여정은 진리를 향한 믿음의 순례였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학자들이 갖고 있는 성경 지식보다 더 실제적이고 순수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헤롯과 예루살렘의 반응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그는 진리를 환영하지 않았고, 위협으로 느꼈습니다. 진리 앞에서 사람들은 둘로 나뉩니다. 경배하거나, 반역하거나.

참된 경배

박사들이 별의 인도에 따라 아기를 찾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립니다. 이 세 가지는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예수님의 삼중적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 황금: 왕의 권위
  • 유향: 제사장의 사역
  • 몰약: 죽음을 통한 구속

이들은 아기의 미래와 구속사적 사명을 미리 보여주는 선물입니다.


헤롯의 살해 계획과 하나님의 보호 (2:13–18)

요셉에게 임한 경고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말하되 헤롯이 아기를 죽이려 하니 이집트로 피하라고 지시합니다. 요셉은 즉시 순종하며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피난을 떠납니다.

하나님은 위기의 순간마다 요셉에게 말씀하시고 보호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요셉의 순종은 이 위기를 하나님의 역사로 바꾸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이집트 피난의 신학적 의미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호세아 11장 1절의 인용입니다. 원래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가리켰던 이 구절이 예수님께 적용되면서, 예수님은 새로운 이스라엘, 새로운 출애굽의 완성자로 등장합니다.

슬픔의 울부짖음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분노하여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의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죽입니다. 그리고 마태는 예레미야 31:15을 인용합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예수님의 탄생은 잔인한 현실 속에서 진행됩니다. 그러나 마태는 이 슬픔조차도 하나님의 예언과 섭리 안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나사렛으로 돌아온 아기 예수 (2:19–23)

다시 나타난 천사의 음성

헤롯이 죽은 후 주의 사자가 애굽에 있던 요셉에게 다시 나타나 돌아가라고 명령합니다. 요셉은 또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셉의 신실한 순종과 하나님의 섬세한 인도하심을 반복해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지시하시고,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나사렛 사람이라 일컬어지리라

요셉은 유대 땅으로 돌아오나, 아켈라오가 유대에서 왕 노릇함을 알고 갈릴리 지방 나사렛에 정착합니다.

이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나사렛 사람이라 일컬어지리라 하심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 구절은 구약의 특정 한 절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복수의 선지자적 암시들을 종합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사렛 사람이라 불리는 것은, 그분이 천한 자리에 오셨다는 것을 의미하며, 겸손하고 무시받는 종의 이미지와 맞닿아 있습니다.


신학적 통찰과 적용

1. 진정한 경배는 지식보다 순종에서 비롯된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구약 성경을 알고 있었지만, 그리스도를 찾지 않았습니다. 반면 동방 박사들은 먼 이방 땅에서 말씀 없이 별을 따라 순례하며, 결국 메시아 앞에 엎드립니다. 진정한 믿음은 거리보다 중심의 방향에서 갈라집니다.

2. 고난 가운데 계신 하나님

예수님은 태어나자마자 살해 위협을 받고 도망자의 삶을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서 쉬운 길을 걷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 속 고난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도 고난을 지나 우리를 구속하십니다.

3. 하나님의 섭리는 혼돈 속에서도 일하신다

예수님의 삶은 혼돈과 위험의 연속이었지만, 그 모든 길 위에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은 그대로 성취됩니다. 세상은 뒤틀려도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내가 오늘 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길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결론: 경배하는가, 거절하는가

마태복음 2장은 인류가 예수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 박사들처럼 순례하고 엎드릴 것인가?
  • 헤롯처럼 두려워하고 배척할 것인가?
  • 종교 지도자들처럼 무관심할 것인가?

예수는 오늘도 우리 삶에 오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어떻게 맞이하는지가 곧 우리의 신앙을 결정짓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지금도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 나는 진리를 위해 어떤 순례를 하고 있는가?
  • 고난과 혼돈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있는가?
  • 예수님 앞에 드릴 나의 예배와 선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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