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신약로마서

로마서 9:32–33 강해, 걸림돌이신 그리스도

BibleMeditation 2025. 4. 3.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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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림돌이신 그리스도, 부딪힘의 영광

로마서 9장의 끝자락인 32절과 33절은 복음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주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의를 구했던 유대인들은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 앞에서 넘어지고, 율법을 몰랐던 이방인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에 이릅니다. 그 중심에는 '부딪힐 돌'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돌'을 두고 구약의 예언을 인용하며,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걸림돌이 되었는지를 강조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복음 앞에서의 반응을 점검하게 합니다.

 

 

부딪힐 돌과 거치는 반석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그들이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거치는 돌과 부딪히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9:32-33).

바울은 이 구절에서 이사야서 두 곳(사 8:14; 28:16)을 혼합하여 인용합니다. 본문에서 '부딪힐 돌'(λίθος προσκόμματος, 리토스 프로스코μ마토스)과 '거치는 반석'(πέτρα σκανδάλου, 페트라 스칸달루)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시온에 두신 이 돌은, 어떤 이에게는 구원의 기초가 되지만, 어떤 이에게는 넘어짐의 원인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기대한 방식, 자기들이 세운 의의 기준에 맞는 메시아를 원했습니다. 예수께서 오셨을 때, 그는 그들의 율법적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았고, 스스로 의롭다 여긴 자들에게는 도전과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었고, 그 돌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부딪힌다는 이 표현은 단순히 우연히 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헬라어 'προσκόπτω'(프로스콥토)는 '걸리다, 장애물에 부딪혀 넘어진다'는 뜻이며, 영적 실명과 반역의 결과로서의 넘어짐을 의미합니다. 이 돌은 그 자체로는 선하지만, 그 돌을 향해 자기 의를 가지고 접근하는 자들에게는 실족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시온에 세워진 하나님의 기준

바울이 인용한 이사야서의 문맥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시온에 '시험한 돌,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을 두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사 28:16). 이 돌은 단단하고 신뢰할 만한 구원의 기반이며,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됩니다. 이 돌은 하나님의 기준이며, 인간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에 기초한 구원의 출발점입니다.

 

하지만 이 돌은 인간의 자랑과 교만을 무너뜨리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이 돌은 자기 의에 빠진 자들을 불편하게 만들며,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직면하게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의 메시아상은 정치적 해방자, 율법의 완성자로서의 메시아였지, 자신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회개하게 만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온에 두신 이 돌은, 하나님의 의가 사람에게 어떻게 주어지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여기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καταισχυνθήσεται, 카타이스휀데세타이)는 최종적인 정죄나 영원한 심판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있다는 구원의 확신을 나타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는 생명의 반석이지만, 거부하는 자에게는 심판의 기초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양면성입니다. 같은 메시지가 누구에게는 생명이 되고, 누구에게는 죽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 앞에서 중립이란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 앞에 세워진 돌입니다. 그 돌을 붙들고 서느냐, 아니면 거부하고 넘어지느냐가 운명을 가릅니다.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 단지 유대인들의 실패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로마에 있는 이방인 교회에게도 복음 앞에서의 참된 반응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에 이른다는 진리를 붙들고 있어야 하며, 신앙의 외형이나 전통, 열심이나 행위에 기초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이 주어집니다. 나는 복음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그리스도는 내게 생명의 기초인가, 아니면 여전히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진리인가? 우리는 종종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내 의를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나의 공로, 나의 열심, 나의 도덕성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그 모든 인간의 자랑을 무너뜨리는 돌입니다.

 

그리스도는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이 나를 살릴 수 있음을 인정하게 하십니다. 그 앞에서 나는 부딪히거나, 엎드려 경배하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 앞에 선 모든 인류의 숙명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지만, 그를 거절하는 자는 그 돌에 부딪혀 심판을 면치 못합니다.

 

이 말씀은 교회를 위한 경고이자 위로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종교적 열심과 형식에 기대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온에 돌을 두셨고, 그 돌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위에 세워질 때에만 참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반석 위에 설 때에만,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서 있을 수 있습니다.

 

결론

로마서 9장 32절과 33절은 복음의 본질이 믿음에 있고, 그 중심에 오직 그리스도께서 계심을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시온에 두신 돌, 곧 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반석이 되지만, 거부하는 자에게는 실족의 장애물이 됩니다. 이 돌 앞에서 우리는 겸손히 무릎 꿇고, 오직 믿음으로만 의에 이르러야 합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인생은, 자기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를 붙드는 인생입니다.

로마서 9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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