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신약로마서

로마서 13:8–10 강해, 사랑의 빚 외에는

BibleMeditation 2025. 4. 4.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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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가는 삶

로마서 13장 8절에서 10절은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삶의 방식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앞서 공적인 권세에 대한 성도의 책임을 다룬 후, 이제는 개인과 공동체 안에서의 삶의 태도를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합니다. 이 구절은 단지 감정적 친절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고 복음을 살아내는 핵심적인 실천으로서의 사랑을 선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는 자가 아니라, 복음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자이며, 이 자유는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니라 이웃을 향한 사랑의 빚을 지는 삶으로 나타나야 ㅎㅏ니다.

 

서로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

8절에서 바울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빚’이라는 말은 단순히 물질적 채무를 넘어서, 도덕적·영적 책임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입니다. 헬라어 ὀφείλετε (오페이레테)는 ‘지불해야 할 의무’ 또는 ‘부채’를 뜻합니다. 바울은 이 세상에서 모든 빚을 다 갚았다고 하더라도 단 하나, 서로 사랑하라는 이 빚만큼은 평생 갚아야 할 의무라고 선언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채무 생활을 경계하라는 말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성경은 정직한 경제생활과 과도한 빚의 위험을 경계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중심은 경제적 윤리라기보다, 복음으로 구원받은 자는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간다는 영적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구원하셨고, 그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졌기에, 이제 우리는 그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차’라는 말은 사랑이 일방적 강요가 아니라, 성도 간에 상호적이며 공동체적으로 실천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자매는 누구나 사랑을 받을 권리와 동시에 사랑을 나눠줄 책임이 있습니다. 이 사랑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구속력 있는 명령이며, 신자의 존재 방식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고 단언합니다. 율법 전체의 핵심이 바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완성은 이웃 사랑이다

9절에서 바울은 십계명 중 일부를 예로 들며, 그 계명의 목적이 결국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요약된다고 말합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계명은 모두 타인을 해치는 행위들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부정적 금지명령들이 결국 한 가지 긍정적인 명령, 즉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통합된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장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계명의 강령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계명에 달려 있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바탕으로, 율법의 모든 세부 규정이 결국 사랑이라는 원리를 위해 존재한다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자연스럽게 율법의 요구가 충족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를 속이지 않을 것이고, 거짓말하지 않을 것이며, 해를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즉 사랑은 율법의 요구를 ‘강제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안에서 ‘자연스럽게’ 완성해 가는 길입니다.

 

여기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ἀγάπη (아가페)입니다. 이 사랑은 인간적인 감정의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의 성품에서 흘러나오는 희생적이며 헌신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존재라면, 이제 그 사랑의 성품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바울은 사랑을 율법의 대체물이 아닌, 율법의 본질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은 외적인 규율이지만, 사랑은 내적인 동기에서 출발하며 율법이 추구하던 삶을 더 온전히 이룹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다

10절에서 바울은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앞의 내용을 종합하며 사랑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요약합니다. 사랑은 단지 감정적 호의가 아니라, 실제로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태도와 행위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말은 단순히 중립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헬라어로 ‘행하다’는 말은 κακοποιεῖ (카코포이에이)로, 적극적으로 해를 끼치는 행위를 뜻합니다. 따라서 사랑은 해를 끼치는 어떤 태도나 말, 행동도 피하려는 의지를 포함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좋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상대의 유익을 위해 선택하고 행동하는 의지적 결단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다시금 강조합니다. ‘완성’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πλήρωμα (플레로마)로, 충만함, 완전함을 뜻합니다. 이는 율법의 목표와 목적이 사랑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율법은 본래 인간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도구였으며, 그 근본 정신은 단지 ‘하지 말라’는 금지 조항이 아니라 ‘사랑하라’는 긍정적 명령이었습니다.

 

개혁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율법은 결코 폐기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된 것이며, 이제는 성령 안에서 성도가 자발적으로 순종하게 만드는 기준으로 자리잡습니다. 사랑은 율법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참된 정신을 이루는 길입니다. 성도는 이제 율법의 정죄 아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은혜 안에서 율법의 목적을 기쁨으로 살아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성도들에게 율법주의적인 외형이 아닌, 사랑이라는 본질에 집중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윤리의 핵심이며, 모든 계명의 실천적 열매입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이웃을 대할 때, 율법이 말하는 거룩과 정의, 자비와 선함이 그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결론

로마서 13장 8절부터 10절은 복음의 진리가 성도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를 가장 본질적으로 요약해줍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의 빚을 진 자로 살아야 하며, 그 빚은 날마다 갚아야 할 살아 있는 의무입니다. 이 사랑은 단지 감정이나 말이 아니라, 율법의 모든 명령을 충족시키는 실제적 삶의 방식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묶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도는 이제 율법의 정죄가 아니라 복음의 은혜 안에서 자발적인 사랑으로 이웃을 대해야 하며, 그 삶이야말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진정한 삶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이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갈 때, 세상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우리를 통해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십시오. 율법을 지키려 애쓰는 대신, 사랑 안에서 율법을 이루는 삶을 사십시오. 그것이 곧 복음으로 사는 길입니다.

로마서 13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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