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신약로마서

로마서 12:14-21 강해 악을 선으로 이기는 복음의 능력

BibleMeditation 2025. 4. 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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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선으로 이기는 복음의 능력

로마서 12장 14절부터 21절은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세상과의 관계, 특히 원수와 악한 자들에 대한 태도를 구체적으로 권면하는 대목입니다. 이전까지는 주로 교회 공동체 내에서의 사랑과 섬김의 자세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외부의 적대적 환경 속에서도 복음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강조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도덕적 계율이 아니라, 복음으로 변화된 삶의 증거로서 선을 선택하고, 악을 이기는 영적 전쟁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복수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기며, 오히려 원수를 향해 자비를 베풀라는 이 말씀은 세상 가치와 정반대이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좁은 길입니다.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바울은 14절에서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박해하다’는 말은 헬라어 διώκω (디오코)로,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괴롭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고통을 주는 자에 대해 인간 본성은 반격하거나 최소한 비난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향해 축복하라고 말합니다. ‘축복하다’는 헬라어 εὐλογεῖτε (율로게이테)는 ‘좋은 말을 하다’ 혹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하다’는 뜻입니다. 단지 욕하지 말라는 소극적 명령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유익을 기원하라는 적극적인 사랑의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고 하신 말씀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교회를 향해 동일한 사랑의 실천을 요구합니다. 복음은 결코 보복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자가는 가장 억울하고 부당한 상황 속에서도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신 예수님의 삶을 따르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저주하지 말라’는 말은 단순히 욕설을 삼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상대의 멸망이나 불행을 기원하는 태도 자체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복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감정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원수까지도 변화시키시는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성도는 말로라도 원수를 저주하지 않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는 사랑의 연대

15절은 공동체의 감정적 연대를 강조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이 구절은 단순한 공감 능력의 요청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나 된 성도들이 서로의 감정에 동참하는 실제적 사랑의 태도를 말합니다. 특히 고난과 눈물의 상황에서 누군가 함께 울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말보다 더 깊은 위로가 됩니다.

 

여기서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다’는 말은 단순히 감정에 이끌리는 상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진정한 가족으로 여길 때 가능해지는 영적 연대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기쁨의 순간에 질투하지 않고, 슬픔의 순간에 무관심하지 않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성도 각자가 자신의 감정만이 아니라, 다른 이의 형편과 고통에도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는 성숙함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연약함에 동정하시는 대제사장이신 것처럼, 우리 또한 서로를 향해 동정과 자비의 마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16절은 이러한 감정적 연대가 겸손한 태도와 연결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 공동체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겸손’입니다. 여기서 ‘마음을 같이한다’는 말은 단순히 의견 일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마음의 방향이 같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특히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라’고 경고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낮은 데 처하라’는 권면은 단지 물리적 위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무시받거나 보잘것없는 자들과 어울리기를 꺼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의 친구가 되셨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 기준이 아닌 복음의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가까이해야 합니다. 교회는 학력, 재산, 지위로 사람을 나누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모든 이들을 존귀하게 대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원수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

바울은 17절부터 본격적으로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여기서 ‘악’과 ‘선’은 단순히 도덕적 개념이 아니라, 복음과 세속의 대립적 태도를 상징합니다. ‘악으로 갚지 말라’는 명령은 억울한 상황에 대해 복수하거나 동일한 방법으로 대응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는 본성에 역행하는 일이지만, 복음의 사람에게는 새로운 기준이 주어졌습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는 말은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함을 뜻합니다. 특히 ‘도모하라’는 헬라어 προνοούμενοι (프로노우메노이)는 단지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즉, 선한 행동은 충동적인 반응이 아니라 의도적 선택과 준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18절은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절대적 명령이 아니라, 성도의 책임의 범위를 분명히 해주는 말씀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라는 표현은 상대의 반응까지 책임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은 다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화목은 양방향의 관계이지만, 성도는 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쪽을 먼저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은 분열과 대립으로 치닫지만, 교회는 화해와 화목을 이루는 곳이어야 하며, 개인 성도도 그런 삶을 지향해야 합니다.

 

19절은 다시 한번 강하게 말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여기서 바울은 신명기 32장 35절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적 심판을 강조합니다. 인간의 복수는 언제나 감정적이고 불완전합니다. 반면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롭고 완전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스스로 판단하고 갚으려 하지 말고, 그 심판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20절은 반전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이 말씀은 잠언 25장 21–22절에서 인용한 것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방식은 바로 ‘긍휼’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숯불을 그 머리에 쌓는다’는 표현은 복수의 의미가 아니라, 양심을 자극하여 회개에 이르게 하는 효과를 말합니다. 선한 행동은 때때로 원수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복음의 핵심 원리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우리 죄인을 향해 복수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자비로 품으셨기에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21절에서 바울은 마침내 이 단락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것이 복음의 전쟁 방식입니다. 악은 악으로 물리칠 수 없습니다. 오직 선만이 악을 넘어설 수 있으며, 진정한 승리는 복수를 통한 파괴가 아니라 용서를 통한 회복에 있습니다.

 

결론

로마서 12장 14절부터 21절은 복음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세상 속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를 강력하게 도전합니다. 복수하지 말고 축복하며, 원수를 사랑하고 긍휼을 베풀라는 이 명령은 세상의 상식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은 바로 그런 역설적인 사랑의 길이며, 주님이 걸으셨던 그 길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 되었기에,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의 진짜 능력이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승리의 길입니다.

로마서 12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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