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9-13 진실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공동체
진실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공동체
로마서 12장 9절부터 13절은 구원받은 성도가 교회 공동체와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본문입니다. 바울은 단순한 윤리 지침을 넘어, 복음으로 변화된 삶의 열매가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이 사랑은 감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따르고 악을 미워하며 선에 속하는 적극적인 태도이고, 성도 간의 우애, 섬김, 인내, 기도, 나눔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연결됩니다. 그 중심에는 ‘거짓 없는 사랑’이 있습니다.
거짓 없는 사랑, 선에 속하는 삶
바울은 9절에서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사랑’은 헬라어로 ἀγάπη (아가페)인데, 조건 없는 희생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 사랑은 단지 인간적 정이나 호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거룩한 사랑입니다. 바울은 이 사랑이 ‘거짓이 없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거짓’이라는 말은 ἀνυπόκριτος (아뉘포크리토스)로, ‘가식 없는’, ‘연기하지 않는’이라는 뜻입니다. 즉, 사랑은 외면적인 행동이나 의무감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이어야 합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종종 혼동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감정적인 호감과 복음적인 사랑입니다. 아가페 사랑은 타인의 유익을 먼저 구하고, 상대의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으며, 때로는 진리를 위하여 단호함과 고통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악을 미워하라’고 곧바로 연결합니다. 사랑은 단지 허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을 분별하고 미워해야 진짜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악을 미워한다는 것은 단지 범죄를 혐오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나도 미워하고, 그 길로 가지 않기 위해 싸우는 태도입니다.
그러면서 “선에 속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속하다’는 말은 헬라어 κολλώμενοι (콜로메노이)인데, ‘붙들다’, ‘꽉 달라붙다’는 의미입니다. 단지 선한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선에 자신의 삶을 고정시키고 밀착시키는 태도입니다. 성도는 선한 일에 집착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악에서 떠나 선을 따라 사는 실천적 태도 속에서 드러납니다.
형제의 우애와 존경의 마음으로
10절은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라는 말씀은 교회 공동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형제를 사랑하여’라는 말에서 ‘사랑’은 φιλαδελφίᾳ (필라델피아)라는 단어로, 가족 간의 애정을 말합니다. 교회는 단지 종교 집단이나 동호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새로운 가족이며, 그 안에는 가족처럼 서로를 향한 따뜻한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 우애하고’는 φιλοστοργοί (필로스토르고이)라는 단어인데, 이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느껴지는 깊은 애착을 의미합니다. 즉, 성도 간의 관계는 단지 겉도는 친절이 아니라, 서로의 고통과 기쁨에 진심으로 함께하는 정서적 연대감이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또한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는 말은, 상대방을 나보다 더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존경(τιμή, 티메)은 그 사람의 존재를 무겁고 귀중하게 여기는 태도이며, ‘먼저 하라’는 말은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뜻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자주 일어나는 갈등은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충돌할 때 생깁니다. 그러나 바울은 남보다 인정받고자 하기보다, 내가 먼저 다른 이를 존귀하게 여기는 태도를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공동체가 가져야 할 문화입니다.
게으르지 말고 열심으로 주를 섬기라
11절은 사랑이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져야 함을 보여줍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는 이 말씀은 신앙 생활의 태도를 점검하게 만듭니다. ‘부지런하여’는 헬라어 σπουδῇ (스푸데)로, 열정과 성실함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게으르지 말라’는 말은 μὴ ὀκνηροί (메 오크네로이)인데, 무기력하고 나태한 상태를 경계하는 표현입니다. 즉, 신앙은 결코 수동적이거나 형식적인 일이 되어선 안 되며,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열심을 품고’라는 말은 ζέοντες τῷ πνεύματι (제온테스 토 프뉴마티)로, 문자적으로는 ‘영으로 끓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성령 안에서 불타오르는 상태를 가리키며, 단순한 감정의 고양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주를 향한 헌신이 끓어오르는 상태를 말합니다. 바울은 그 열정을 ‘주를 섬기는’ 데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섬기다’는 말은 δουλεύοντες (둘레우온테스)로, 노예처럼 충성되게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예배는 일회적인 감정이 아니라, 삶 전체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태도로 나타나야 합니다.
사랑은 뜨거운 열심으로 주님을 섬길 때 구체적인 형태를 갖게 됩니다. 무기력한 신앙은 곧 사랑의 식음과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 있다면 반드시 열정이 뒤따릅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인내하며 기도하며 나누라
12절과 13절은 공동체 안에서, 특별히 고난과 결핍의 현실 속에서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라는 말씀은 신자의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복음적 태도를 제시합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는 말은 미래의 영광과 약속을 붙잡고 오늘의 삶에서 기쁨을 누리라는 권면입니다. 이 기쁨은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세상의 감정적 즐거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뿌리를 둔 신앙의 열매입니다. ‘환난 중에 참으며’라는 말씀은 고난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도 끝까지 인내하며 견디라는 요청입니다. 여기서 인내(ὑπομένοντες, 휘포메논테스)는 단지 참고 기다리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놓지 않고 전진하는 적극적인 인내입니다.
‘기도에 항상 힘쓰며’라는 말씀은 성도의 모든 삶의 에너지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공급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여기서 ‘항상 힘쓰다’는 προσκαρτεροῦντες (프로스카르테룬테스)는 꾸준하고 지속적인 태도를 의미하며, 삶의 중심에 기도가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기도는 선택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힘을 얻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기도에 매달려야 합니다.
그리고 13절은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는 권면으로 이어집니다. ‘쓸 것을 공급한다’는 말은 헬라어 κοινωνοῦντες (코이노눈테스)인데, 이는 단순한 물질의 나눔이 아니라, 공동체적 연대와 참여를 뜻합니다. 성도의 피로를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누는 삶은 사랑의 실제적인 열매입니다.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인을 향한 환대, 낯선 이를 위한 따뜻한 대접은 교회가 가진 고유한 문화입니다. ‘힘쓰라’는 말은 διώκοντες (디오콘테스)로, 추적하다, 쫓다라는 뜻이 있는데, 이는 적극적으로 기회를 찾아서 섬기라는 도전입니다.
결론
로마서 12장 9절부터 13절은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나 말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행동으로 구체화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거짓 없는 사랑은 악을 미워하고 선을 따르는 삶으로 나타나야 하며, 성도는 서로를 가족처럼 여기며 존귀히 대해야 합니다. 게으르지 않고 열심으로 주를 섬기며, 고난 중에도 소망으로 기뻐하고 인내하며 기도하는 삶이 곧 복음에 합당한 삶입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서로의 피로를 돌아보며 기꺼이 나누고 섬겨야 하며, 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바울은 복음으로 변화된 자는 반드시 그 사랑을 드러내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사랑이 교회를 살리고, 세상 속에서 복음을 증언하는 가장 강력한 방식이 됩니다.
로마서 12장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