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6–29 강해, 긍휼히 여기실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 선택의 신비 앞에 서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구원 실패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선택과 주권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로마서 9장 6절부터 29절까지는 인간의 눈에 불공정하게 보일 수 있는 구원의 신비를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이라는 틀 안에서 풀어내며, 하나님의 구속사가 인간의 공로가 아닌 전적인 은혜임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폐해지지 않았다
바울은 먼저 이스라엘이 구원에서 떨어져 나간 것을 두고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롬 9:6)라고 강하게 선언합니다. 이는 겉으로 보기엔 하나님의 언약이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이 더 정밀하게 성취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중요한 문장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구속사의 진리를 밝힙니다. 이스라엘이라고 다 이스라엘이 아니며,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다 그의 후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단순한 혈통이 하나님의 백성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에 근거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 참 이스라엘을 구성한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선택하시고 이스마엘을 제외하셨습니다. 다시 야곱을 선택하시고 에서는 버리셨습니다. 이 선택은 그들의 행위나 자질과 무관하게 이루어진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된 것입니다(롬 9:11). 바울은 이 선택의 기준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단어 'ἐκλογή'(에클로게)는 단순한 선택이 아닌, 주권적인 선포와 정하심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조건이나 자격을 고려한 판단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신적 선언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말라기서의 인용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 얼마나 인간의 도덕적 잣대를 초월하는지를 강조합니다.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롬 9:13). 이 표현은 감정적 혐오가 아니라, 구속사에서의 구별과 주권적 선택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계획 안에서 어떤 사람은 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택하지 않으시는 자유를 가지십니다. 이 진리는 인간의 평등 개념에 도전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철저히 은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집니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실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
이 하나님의 선택 앞에서 사람들은 당연히 질문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불의가 있는가?" 바울은 강하게 부정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롬 9:14).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공로에 따라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기에, 불의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실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불쌍히 여기실 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자유입니다(롬 9:15).
이 대목에서 바울은 출애굽기 33장의 모세 사건을 떠올립니다. 금송아지 사건 이후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을 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풀리라"(출 33:19). 이는 하나님의 긍휼이 단지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과 뜻에서 흘러나오는 은혜임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바울은 바로의 사례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또 한 번 드러냅니다. "내가 바로를 세운 것은 나의 능력을 그 안에서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롬 9:17).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능력을 동시에 드러내셨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 'σκληρύνω'(스클뤼노)는 단순한 감정적 완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적 계획에 따라 마음을 강퍅하게 하시는 신적 주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선언합니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 9:18). 이 말씀은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분명히 드러냅니다.
토기장이 비유와 긍휼의 그릇
이제 독자의 머릿속에 또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정하셨다면, 인간에게 어떻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강조하는 비유로 답합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 쓰는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쓰는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롬 9:21)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뜻에 따라 어떤 자는 긍휼의 그릇으로, 어떤 자는 진노의 그릇으로 만드실 권리가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되는 논리가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당연하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는 인간이 이해하려 하기보다, 경외함으로 받아들여야 할 신비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 단지 멸망이나 진노에만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긍휼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롬 9:22-23).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예비하신 바"라는 표현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미 창세 전부터 긍휼의 그릇들을 구원의 목적 안에서 준비하셨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주권은 파괴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영광을 위한 도구로 계획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이는 결국 구원의 본질이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에 있다는 복음의 중심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해줍니다.
바울은 여기서 이방인의 구원과 남은 자 이스라엘의 구원이 함께 성취되고 있음을 구약의 예언들을 통해 해석합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를 내 백성이라 부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롬 9:25-26)고 말합니다. 이는 이방인의 구원이 구속사 안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확증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남은 자가 구원받을 것을 강조합니다. "비록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롬 9:27). 하나님의 구원은 결코 수적 다수에 있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택된 자들에게 임하는 은혜임을 드러냅니다.
결론
로마서 9장 6절부터 29절은 복음이 단지 인간의 응답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뿌리를 둔 것임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이 진리는 인간의 자랑을 무너뜨리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의로나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진리를 깨달은 우리는 더 깊은 감사와 경외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선택의 신비 앞에 서서, 더욱 겸손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붙들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9장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