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5:18-21 은혜가 더욱 넘친다
죄를 이긴 은혜, 생명으로 이끄는 복음
로마서 5장 18절부터 21절은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표성에 대한 바울의 신학적 논증을 마무리하면서, 죄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는 복음의 절정을 이룹니다. 이 본문은 단순한 윤리적 권면이 아니라, 인간의 근본 문제인 죄와 사망을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신학적으로 정리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죄와 율법, 정죄와 사망, 순종과 의, 은혜와 생명의 긴장 구조 속에서 복음이 어떻게 모든 것을 초월하여 구원의 능력으로 작용하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순종 (5:18-19)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5:18-19)
바울은 여기서 구속사적 대조의 결론을 내립니다. 아담과 그리스도, 이 두 대표자의 행위가 인류 전체에게 미치는 결과를 대조하면서, 복음의 논리를 명확히 합니다.
18절은 아담의 한 범죄와 그리스도의 한 의로운 행위를 비교합니다. '한 범죄'(παραπτώματος, 파라프토마토스)는 아담의 불순종, 곧 선악과를 먹은 행위를 가리키며,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명백한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정죄(κατάκριμα, 카타크리마)에 이르렀습니다. 앞서 바울은 이미 5장 12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말했는데, 여기서 그 결과로 '정죄'가 따라온다는 점을 다시 강조합니다.
그에 반해 '한 의로운 행위'(δικαιώματος, 디카이오마토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에 걸친 순종, 특히 십자가 위에서의 완전한 순종을 의미합니다. 이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른다고 선언합니다. 이 생명은 단지 육체적 연장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 곧 하나님과의 화목된 관계 속에서 누리는 영적 생명입니다.
19절에서는 그 대표성의 논리를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παρακοῆς, 파라코에)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고, 한 사람의 순종(ὑπακοῆς, 휘파코에)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이 인류 전체를 죄 아래 놓이게 했다는 사실은, 인간의 구원이 전적으로 은혜에 달려 있다는 진리를 강조합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모든 믿는 자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선언하게 하는 유일한 근거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것을 '행위의 전가'라고 부릅니다. 아담의 죄가 그의 후손에게 전가된 것처럼, 그리스도의 의는 믿는 자에게 전가됩니다. 이는 단순한 형식적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대표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언약적 질서이며, 이 질서 안에서 우리는 구원을 얻습니다.
율법이 가져온 정죄의 지배와 은혜의 초월 (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5:20)
이 구절은 율법과 죄, 그리고 은혜 사이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바울은 율법이 죄를 막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더하게 하기 위해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이 진술은 단순히 율법이 죄를 조장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롬 7:12). 그러나 인간의 죄성은 율법 앞에서 자신의 죄를 더욱 분명히 드러내게 됩니다. 즉 율법은 죄를 밝히 드러내는 거울의 역할을 하며, 그로 인해 죄의 본질과 범위가 더 분명해집니다.
이때 바울은 놀라운 복음의 선언을 합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 여기서 '더욱 넘쳤다'(ὑπερεπερίσσευσεν, 휘페레페리스세우센)는 단어는 강조된 복합어로, 단순한 증가가 아니라 폭발적이고 넘치는 은혜를 의미합니다. 죄가 깊어질수록 은혜는 더 깊고 풍성하게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결코 죄를 가볍게 여기게 하는 면허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의 철저함을 직면하게 할 때에야 비로소 은혜의 무한함을 깨달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죄가 얼마나 치명적이며, 우리를 파괴하는지 깨닫는 자만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감격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주는 위로는, 어떤 죄도 은혜보다 클 수 없다는 복음의 진리입니다. 죄는 우리를 삼키려 하지만, 은혜는 우리를 붙들어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은혜의 통치, 생명의 길로 이끄는 하나님의 계획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5:21)
바울은 21절에서 이 대조 구조를 정리합니다. 죄는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했습니다. 앞서 5장 17절에서도 바울은 사망이 아담을 통해 왕 노릇 했다고 말했습니다. 죄는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필연적으로 사망이라는 열매를 맺습니다. 인간은 아담의 죄로 인해 죄 아래 놓였고, 사망의 지배 아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은혜가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한다고 바울은 선언합니다. ‘왕 노릇 하다’(βασιλεύσῃ, 바실류세이)라는 표현은 통치한다, 지배한다는 의미이며, 이는 단순히 감정적인 위로가 아니라, 실질적인 통치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은혜가 이제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그 은혜는 의를 통해 역사합니다. 여기서 '의'는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목적지는 분명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이 복음의 흐름은 죄 → 정죄 → 사망이라는 아담 안의 흐름을 완전히 전복시키며, 은혜 → 의 → 영생이라는 새로운 구속사의 질서를 세웁니다. 이는 복음의 승리이며, 하나님 나라의 도래입니다.
영생은 단지 죽은 후 천국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예수님은 영생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곧 영생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살아가는 존재의 회복이며, 현재적이면서도 미래적인 구원의 실재입니다.
바울은 이 놀라운 진리를 단지 논리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 아래 복음의 능력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죄가 아무리 강해도, 은혜는 그보다 더 크고 넓고 깊다는 선언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 안에서 왕 노릇하게 될 때, 우리는 진정한 생명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결론: 죄의 시대를 끝내고 은혜의 시대를 살아가라
로마서 5장 18절부터 21절은 복음의 정수를 드러냅니다. 아담의 불순종은 모든 사람을 정죄에 이르게 했지만, 그리스도의 순종은 많은 사람을 의롭다 하심으로 생명에 이르게 했습니다. 율법은 죄를 드러냈지만, 은혜는 그 죄를 넘어서 압도하며, 생명으로 이끄는 능력으로 작용합니다. 오늘 우리는 그 은혜의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더 이상 죄와 사망이 다스리는 시대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가 왕 노릇하고, 그 은혜는 우리를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명의 길로 이끌어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히 은혜 안에 거하며, 영생을 향한 소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로마서 5장 요약 및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