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신약로마서

로마서 강해 5:15-17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조

BibleMeditation 2025. 3. 29.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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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서 은혜로: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조

로마서 5장 15절부터 17절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단순한 유사성으로 비교하지 않고, 본질적인 차이를 강조하면서 복음의 탁월함을 드러냅니다. 바울은 죄와 사망을 가져온 아담과 은혜와 생명을 가져온 그리스도를 나란히 놓고, 전 인류에게 미친 두 사람의 영향력을 대조합니다. 이 본문은 복음의 본질이 단지 죄를 상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보다 훨씬 풍성한 은혜의 승리를 선언하는 구속사적 절정입니다.

아담의 범죄와 그리스도의 은혜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5:15)

바울은 먼저 “그러나”(ἀλλ᾽)라는 강한 대조의 접속사로 두 대표의 차이를 강조합니다. 앞 구절들에서는 아담이 모든 인류에게 죄와 사망을 가져왔음을 말했지만, 이제 그는 아담의 범죄와 그리스도의 은혜가 같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 비교는 단순한 평행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다른 두 사건의 구속사적 대조입니다.

첫째, 아담의 범죄는 사망을 가져왔습니다. 바울은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선언합니다. 이 '죽음'은 육체적 죽음, 영적 죽음, 그리고 종말론적 사망을 모두 포함합니다. 아담의 불순종은 전 인류를 정죄의 자리로 끌어내렸고, 사망의 권세 아래 놓이게 했습니다. 이 죽음은 단지 하나의 결과가 아니라, 죄의 지배 아래 놓인 인간의 전 존재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혜는 다릅니다. 바울은 그 은혜를 '하나님의 은혜'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라고 이중으로 강조합니다. 이 은혜는 죽음을 막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넘쳤다’(ἐπερίσσευσεν)고 선언됩니다. 이 단어는 ‘풍성히 흘러넘치다’, ‘차고도 넘치다’는 의미를 가지며, 죄가 가져온 죽음보다 훨씬 큰 능력과 충만함을 지닌 은혜임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단순히 아담과 그리스도가 각기 하나의 대표로서 대등하게 작용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담의 범죄는 파괴적이었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는 그것을 넘어서 회복시키며, 더 풍성한 생명을 공급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탁월함입니다. 복음은 죄를 무효화하는 것을 넘어, 죄가 없던 상태보다 더 나은 의의 자리에 이르게 합니다.

정죄에서 의롭다 하심으로: 두 선물의 차이 (5: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5:16)

바울은 16절에서도 두 가지 선물—즉 아담의 죄로 인한 정죄와,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한 칭의—를 비교하며, 둘의 본질적인 차이를 다시 강조합니다.

첫 번째 선물은 ‘심판’이며, 그 결과는 ‘정죄’입니다. 여기서 ‘정죄’(κατάκριμα, 카타크리마)는 법정 용어로, 죄에 대한 유죄 판결을 의미합니다. 아담의 단 하나의 범죄는 전 인류를 정죄 아래에 놓이게 했습니다. 이 정죄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설 수 없는 상태, 다시 말해 영원한 심판의 대상으로 존재하게 되는 무서운 선고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선물, 곧 ‘은사’(χάρισμα, 카리스마)는 많은 범죄에도 불구하고 ‘의롭다 하심’(δικαίωμα, 디카이오마)에 이르게 합니다. 이 단어는 ‘칭의’ 또는 ‘의로운 판결’을 의미하며, 본래 죄인이었던 자가 하나님의 법정에서 무죄 선언을 받는 사건입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하나의 범죄로 정죄에 이르렀지만, 수많은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오히려 칭의로 이끈다는 점입니다.

이 비교는 은혜의 절대적 우월함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단 하나의 죄로도 심판을 받아 마땅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수많은 범죄를 가진 자들에게도 오히려 은혜를 베푸셔서 의롭다 하십니다. 이것은 법적 공의를 훼손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속죄가 완전하다는 사실을 근거로 한 정당한 선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믿는 자에게 전가됨으로써, 우리는 실제로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는 판결을 받게 됩니다.

이 구절은 모든 인간이 얼마나 절망적인 위치에 있었는지를 확인시켜줌과 동시에, 복음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 안에서 칭의의 선물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은혜는 결코 값싼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희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사망의 왕 노릇과 은혜의 왕 노릇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은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5:17)

바울은 이제 마지막 절에서 비교를 넘어 정반대의 통치 구조를 제시합니다. 아담을 통해 사망이 왕 노릇했다면,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를 받은 자들은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사망이 왕 노릇 했다’(ἐβασίλευσεν ὁ θάνατος)는 표현은 단지 죽음이 임했다는 것이 아니라, 죄 아래 놓인 인간의 삶 전체를 사망이 지배했다는 뜻입니다. 사망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죄로부터 흘러나온 통치권입니다. 창세기 이후 인간은 늘 사망의 그림자 아래 살아왔으며, 이는 신체의 죽음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단절, 생명의 부재, 영적 죽음을 모두 포함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강력하게 선언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은 자들은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할 것이다.’ 여기서 '왕 노릇 한다'(βασιλεύσουσιν)는 말은, 단지 구원받는 것 이상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생명의 통치를 나누게 된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단지 생명을 얻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생명을 통해 왕 같은 존재로 회복될 것임을 말합니다.

이 통치는 이미 시작된 현재적 실재이면서, 장차 완성될 종말론적 영광을 내다보게 합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혀졌으며(엡 2:6), 장차 그와 함께 영원히 다스릴 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계 22:5). 아담의 죄로 사망이 통치하던 세상은 이제,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생명이 통치하는 새 창조의 질서로 전환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신자의 정체성을 새롭게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며, 사망의 권세 아래 눌린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은혜 안에 살며, 생명의 통치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입니다.

결론: 죄보다 더 크신 은혜

로마서 5장 15절부터 17절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단순히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가져온 파괴보다 더 크고 위대한 그리스도의 은혜를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정죄와 사망이 임했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는 오히려 많은 범죄 가운데서도 의롭다 하심을 가져왔고, 사망이 지배하던 인생을 생명이 통치하는 자리로 회복시키셨습니다. 이는 복음의 승리이며, 신자의 확신입니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죽은 자였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 가운데 왕 노릇하게 되었습니다. 이 복음을 믿고 누리는 자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로마서 5장 요약 및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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