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5:12-14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표성
아담과 그리스도, 인류의 두 대표
로마서 5장 12절부터 시작되는 본문은 인류 구원사에서 핵심적인 전환점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 부분에서 아담과 그리스도를 인류의 두 대표로 대조하며, 각각이 인류에게 미친 영향, 즉 죄와 사망, 의와 생명의 흐름을 대비합니다. 이 본문은 단지 죄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더욱 선명히 드러내기 위한 구속사적 대비 구조를 형성합니다. 아담은 첫 언약의 대표로서 인류에게 사망을 가져왔고,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대표로서 의와 생명을 가져오셨습니다. 그 핵심이 바로 본문 12절에서 14절까지 드러납니다.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느니라”(5:12)
바울은 여기서 복음의 논리를 ‘그러므로’(Διὰ τοῦτο, 디아 투토)라는 연결어로 전개합니다. 이는 앞서 말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의 은혜가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구속사적 원인입니다. 인간이 왜 구원받아야 하며, 왜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절실한지를 뿌리부터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본문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한 사람’은 명확히 아담을 가리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건은 단지 한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전 인류에게 영향을 미친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개혁주의는 이를 ‘대표적 언약’(federal covenant) 혹은 ‘언약적 대표성’이라고 부릅니다. 즉 아담은 인류 전체의 대표로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고, 그의 순종 혹은 불순종이 그 아래 있는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죄의 기원이며, 인간은 본질적으로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εἰσῆλθεν, 에이셀센)고 표현합니다. 이는 죄가 원래 세상 밖에 있었고, 아담의 범죄를 통해 세상 안으로 침입한 외래적 존재로 묘사합니다. 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를 오염시키고 질서를 파괴하는 전염적 힘으로, 한 사람의 문을 통해 세상 전체를 감염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해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여기서 ‘사망’은 단순한 육체적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창세기 2장 17절의 말씀처럼, 죄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영적 사망이며, 동시에 영원한 심판에 이르는 존재적 파괴입니다. 아담의 죄는 단지 육체의 유한함을 초래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사망의 권세 아래 두게 만든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죄를 지었다’(ἥμαρτον, 헤마르톤)는 동사는 단순 과거형으로, 아담의 죄에 동참한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단지 모든 사람이 각자 죄를 지었다는 말이 아니라, 아담 안에서 함께 죄를 지은 존재로 간주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대표성의 원리에 따른 신학적 해석이며, 우리가 아담과 무관한 존재가 아니라, 아담 안에 있었던 존재라는 선언입니다.
이 말씀이 주는 충격은 큽니다. 우리는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죄인으로 간주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복음의 전제를 형성하는 토대입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가 죄인이 된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는 것이 복음의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율법 이전에도 죄와 사망이 있었다 (5:13)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5:13)
이 구절은 율법의 역할과 죄의 정의에 대해 혼란이 있을 수 있는 독자들을 위한 설명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율법이 모세에게 주어지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죄를 계수하지 않으셨다면, 아담부터 모세까지의 사람들은 어떻게 죄인이 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바울의 답은 명료합니다. 죄는 율법 이전에도 존재했고, 그로 인해 사망은 계속해서 인류를 지배해 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죄가 세상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명문화하고 구체화한 도덕적 기준이지만, 그 이전에도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과 불순종은 존재했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담의 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사건은 명시적 율법이 있기 전이지만, 그 행위는 분명한 죄였습니다. 이는 죄가 율법 이전에도 존재하며, 양심과 일반은총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인간 안에 각인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말하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는 표현은, 율법이 없을 때는 그 죄가 법적으로 계수되지 않았다는 뜻이지,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이 죄를 명확히 드러내고 규정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말할 뿐, 죄 자체의 실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죄와 율법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죄의 보편성과 인류의 전적 타락을 더욱 분명히 합니다. 결국 아담 이후 모든 인류는 율법이 있든 없든, 본질상 죄인이며, 이는 모든 인간이 복음의 필요 앞에 동일하게 서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아담의 죄로 인한 사망의 지배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5:14)
이 구절은 본문의 핵심 메시지를 다시 강조하면서,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표성을 구속사적으로 연결합니다. 바울은 ‘아담부터 모세까지’라는 시간대를 제시하면서, 모세 율법 이전의 인류가 어떻게 사망 아래 있었는지를 증언합니다. 율법이 없었기에 아담처럼 ‘계명을 어기는 형태의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망은 모든 인류를 지배했습니다.
여기서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ἐβασίλευσεν ὁ θάνατος, 에바실류센 호 타나토스)는 표현은 사망이 주권자처럼 인류 위에 군림했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사망이라는 권세가 인류 역사 전체를 통치하는 상태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지 육체적 죽음만이 아니라, 영적 죽음과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상태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충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아담은 죄의 대표이지만, 동시에 오실 이, 곧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형’(τύπος, 튀포스)은 ‘전조’, ‘예시’, ‘그림자’라는 의미로,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는 뜻입니다. 아담은 죄를 통해 인류를 대표했지만, 그리스도는 의를 통해 인류를 대표하실 분입니다. 이 둘의 평행 구조는 바울의 복음 선포에 있어 결정적 신학 구조를 이룹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복음의 논리를 더욱 분명히 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었기에, 하나님은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새로운 인류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아담이 첫 번째 대표라면, 그리스도는 마지막 대표입니다. 아담 안에서 사망이 왕 노릇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은혜가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두 대표 아래 있는 인류, 어디에 속할 것인가
로마서 5장 12절부터 14절은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표성을 중심으로 인류의 구속사적 위치를 조망하게 합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이 되었고, 그 결과 사망이 우리 위에 왕 노릇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율법이 있기 이전에도 명백히 드러난 진리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아담이 오실 자, 곧 그리스도의 모형이라 말함으로써, 새로운 대표의 도래를 예고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아담 안에 속한 자로 머물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새 피조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가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습니다. 아담의 자손으로 살 것인가,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거할 것인가. 그 선택 앞에 우리는 복음으로 초대받고 있습니다.
로마서 5장 요약 및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