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신약로마서

로마서 강해 5:6-11,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대속

BibleMeditation 2025. 3. 29.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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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 위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로마서 5장 6절부터 11절은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어떤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그리고 그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어떤 구속의 열매를 가져왔는지를 설명합니다. 바울은 이 단락에서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대속, 그리고 성도가 누리는 화목의 기쁨을 통해 복음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적 사랑이 아니라, 전 인격적이고 실존적인 구원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 (5:6-8)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5:6).

 

바울은 복음의 역설을 제시합니다. 인간이 강할 때, 선할 때, 준비되었을 때가 아니라, ‘연약할 때’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연약함’(ἀσθενῶν, 아스테논)은 단지 육체적 허약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무능하고,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없는 전적인 타락의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존재이며, 전혀 자격이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말합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7-8).

인간의 사랑은 대개 자격 있는 자를 향합니다. 의롭거나, 선하거나, 최소한 사랑받을 만한 가치를 지닌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인간의 조건적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조건 없이, 오히려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죽게 하심으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여기서 '확증하셨느니라'(συνίστησιν, 쉬니스테신)는 단어는 '보여주셨다', '증명하셨다'는 의미를 넘어서, 어떤 것을 명백히 제시하고 추천하는 뜻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사건으로 드러내셨습니다. 곧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전혀 사랑받을 자격이 없을 때, 하나님은 가장 고귀한 아들을 내어주심으로 그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이 구절은 인간 중심의 신앙을 뿌리째 흔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자로 준비되었기 때문에 사랑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 사랑은 이미 십자가에서 실현되었습니다. 이 은혜는 그 어떤 공로나 가치와도 무관하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입니다.

 

피로 의롭다 하심과 진노에서의 구원 (5:9)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5:9)

 

여기서 바울은 과거의 사건과 미래의 확신을 연결합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는, 장차 하나님의 심판 날에 그의 진노에서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이는 바울 특유의 ‘더욱 그러하리라’(πολλῷ μᾶλλον, 폴로 말론)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강조됩니다.

 

‘그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가리킵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것을 ‘대속적 죽음’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예수께서 단지 고통당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죄인을 대신하여 심판을 받으신 속죄 행위라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이 말하듯,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의롭다 하심’(δικαιόω, 디카이오오)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법적 선포입니다. 이는 죄인이 실제로 완전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선언입니다. 따라서 이 칭의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현재의 신분 변화이며, 동시에 미래의 구원을 보증하는 기초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단지 감정적인 분노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에 대해 반드시 반응하시는 의로운 심판입니다. 그 진노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의 피뿐입니다. 예수의 피는 진노를 가로막는 방패이며, 그 피를 힘입은 자는 결코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복음의 확실한 약속이며, 성도의 궁극적 위로입니다.

 

화목하게 하신 하나님과의 즐거움 (5:10-11)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5:10).

 

바울은 여기서 ‘원수 되었을 때’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는 단지 관계가 멀어진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서의 본성을 말합니다. 인간은 타락 이후 하나님을 피하고 거역하며, 그의 영광을 싫어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우리는 화목할 수 없으며, 누군가 중재자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 중재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화목하게 되었다’(καταλλαγέντες, 카탈라겐테스)는 단어는 적대적 관계가 깨지고 평화가 이루어졌다는 법적 용어입니다. 이 화목은 인간의 회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은 단지 죄 문제를 해결했을 뿐 아니라, 관계를 회복시킨 사건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칭의의 확증일 뿐 아니라, 성도의 구원이 끝까지 이루어질 것이라는 보증입니다. 그는 지금도 살아 계시며,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시며(히 7:25), 그의 생명이 우리 안에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1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이 기쁨은 단지 감정적인 환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 안에서 누리는 신자의 지속적이고 내적인 확신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다시 한 번 ‘카우코메타’(καυχώμεθα)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이는 자랑하고 즐거워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은 신자에게 지속적인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정죄받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자들입니다.

 

결론: 가장 연약할 때 주어진 가장 큰 사랑

로마서 5장 6절부터 11절은 복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죄인 되었을 때, 심지어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의 피로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그의 살아나심으로 우리는 구원을 보장받았습니다. 더 이상 정죄와 진노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한 자로서 즐거워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이며, 이 복음은 우리 인생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결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합니다.

로마서 5장 요약 및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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