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신약로마서

로마서 2:1-11

BibleMeditation 2025. 3. 28. 16:38
반응형

판단의 자리에서 은혜의 자리로

로마서 2장 1절부터 11절은, 인간의 위선과 하나님의 공의를 정면으로 대조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이 갖는 공의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남을 판단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오직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함을 알게 됩니다.

판단하는 자에게 주시는 말씀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2:1). 바울은 갑작스레 청중을 바꿉니다. 1장에서 우상숭배와 도덕적 타락을 언급할 때는 주로 이방인들을 향해 말했지만, 2장에 들어서며 이제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자들, 특히 유대인들을 향해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 시대 유대인뿐 아니라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연수가 쌓이고, 말씀에 익숙해지면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다른 이들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자리에 서기 쉽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네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서도 똑같은 일을 행하고 있다면, 너는 스스로를 정죄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 "판단"(크리노, κρίνω)은 단순히 분별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정죄하고 규정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리에 서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살피기보다, 말씀을 들고 타인을 평가하려 한다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은 자신도 동일한 죄를 지으면서 남을 판단할까요? 그것은 자기 의 때문입니다. 자기 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게 하고, 오히려 타인을 통해 스스로의 우월함을 확인하려는 죄된 본성의 발현입니다. 이 자기 의는 복음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우리는 율법이 없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을 정죄하지만, 정작 우리 안의 정욕과 교만, 위선은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회개를 촉구하심

2장 4절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진리를 드러냅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회개의 기회입니다. 하나님은 즉시 심판하지 않으시고, 참으시며, 기다리십니다. 하지만 그 인자하심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오래 참으심은 죄를 허락하심이 아니라, 돌아올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인자하심'(크레스토테스, χρηστότης)입니다. 이는 단순한 착함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능동적인 선하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단순한 관용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이 인자하심을 멸시합니다.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 의에 머물며, 하나님 앞에 무감각한 상태로 살아갑니다.

또한 5절은 경고합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이 말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여기에 '고집'(스클레로테스, σκληρότης)이라는 단어는 '딱딱함', 즉 영적 완고함을 뜻합니다. 이는 출애굽 당시 바로의 마음이 강퍅했던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회개를 거절하고 계속해서 자기 길을 고집하는 자에게는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쌓여갑니다. 참 무서운 표현이지요. 우리가 보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진노가 쌓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심판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갚으시는 것입니다(2:6). 이는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 원칙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이 '행위대로 갚으심'은 율법주의적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지만, 진정한 믿음은 반드시 삶의 열매로 나타난다는 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행위는 구분되지만,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그 삶의 열매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2장 11절은 이 전체 단락의 요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여기서 '외모'(프로소폰, πρόσωπον)는 문자적으로는 얼굴을 뜻하지만, 본문에서는 사회적 지위, 혈통, 문화적 배경, 종교적 경력 등을 포함한 외적인 조건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들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사람을 평가할 때 외적인 조건을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겉모습으로 판단합니까? 누가 더 오래 신앙생활을 했는지, 누가 더 많이 아는지, 누가 더 인정받는지를 보며 사람을 평가하고, 때로는 그 기준으로 자신을 높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다른 기준으로 보십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마음이 회개했는지, 진리를 사랑하는지, 자기 죄를 슬퍼하는지를 보십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타인을 향해 정죄하거나 우월감을 가질 수 없게 만듭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을 깊이 성찰하게 만듭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사람인가, 내가 말로는 복음을 말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복음의 빛을 드러내고 있는가. 하나님은 외적인 포장보다 중심의 진실함을 원하십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 신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원칙을 가르칩니다. 복음은 단지 이방인의 죄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위선을 드러내고, 나아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동일하게 죄인임을 인정하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복음은 나를 타인보다 낫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낮추어 은혜로 살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결론: 심판 앞에 선 나, 은혜 앞에 서다

로마서 2장 1절부터 11절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판단하던 자리를 떠나, 스스로 하나님의 공의 앞에 서게 만듭니다. 겉으로는 의로워 보일 수 있으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회개를 위한 기회이지, 방임의 면허가 아닙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오직 은혜만을 의지해야 하며, 날마다 마음을 낮추고 회개의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늘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비추어 보고,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반응형